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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잔혹 '오징어게임'의 문화사회적 코드

 

딱지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한국의 전래 어린이 놀이를 끌어다 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러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이 드라마에는 콘텐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촘촘하게 들어 있다. 공포물, 게임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 소외된 자들의 서사, 화려한 무대장치, 컬러와 도형이 주는 상징 등 어느 것 하나를 뽑아 즐겨도 부족함이 없다.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조롭고,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다. 훌룽한 예술 작품처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한국의 전래 어린이 놀이가 아닐까? 어떤 사회적 요소가 깃들어 있기에 드라마에서 재구성을 했고, 이질적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차용된 놀이를 들여다보면 윤곽이 잡힌다. 놀이에서 지면 혹독한 결과가 따른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등의 경우 지는 쪽은 자신의 것을 빼앗겨 빈털터리가 된다. 오징어는 드라마에서 "육체적이며 폭력적"이라고 말했듯이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죽는 건 예삿일이다.

 

이처럼 한국의 전래 어린이 놀이는 폭력적이다. 잔혹서사의 동화와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틈이 있다. 아동 심리학자 베텔하임의 동화 분석을 빌려오자. 그는 동화의 폭력성에 주목하였다. 그에 따르면 동화가 잔혹한 것은 어린이들에게 가혹하고 문제투성이인 세상을 알리고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어린이 놀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둘은 내면적 목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어린이 놀이를 어린이들이 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한다. 이 전복이 드라마의 역설이자 동시에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그 까닭이 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공장에서 파업을 하다 해고돼 아내와 이혼하고 경마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주인공, 증권사 근무 중 일확천금을 꿈꾸다 추락해 수배를 받고 있는 명문대 출신 남성, 탈북 여성, 조직폭력배, 술집 여성, 외국인 노동자.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살인적 양극화 사회의 한 극에 몰린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드라마는 그들의 비루한 삶을 조명한다. 돈이 신이 돼버린 무한 경쟁 사회에서 패배자인 그들의 현실은 희망 없는 나날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그렇게 만든 설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구조악속에서 똑같은 처지의 하층민들끼리 물고 뜯고 싸울 뿐이다. 이런 현실은 지옥과 무엇이 다르냐고 드라마는 묻는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서로 물고 뜯다 죽을래? 아니면 서로 물고 뜯다 죽을 수 있지만 일확천금이라도 꿈꿀래?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후자를 택한다. 어린이 놀이가 어른의 놀이가 되는 것이다. 사실 둘은 하나다. 오징어게임은 현실이고, 현실은 오징어게임이다.

오징어게임은 우리가 고통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망각하고 있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상징일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의 전래 어린이 놀이를 끌어다 쓴 것일까? 어린이들이 경계했던 세계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우리 삶 자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자신의 어릴 적 잔혹놀이를 따라하는 것은 천민난만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실재 삶과 같은 것이라면 그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을까? 오징어게임은 잔혹의 잔혹이다. 이는 세계적 현상인 양극화를 읽는 한 방법일 것이다.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폭력적 상징이 적확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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