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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흙수저 소년공에서 與 대선후보까지

 

10대 대부분을 소년공으로 전전하던 소년이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만큼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10일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의 이야기다.

 

이 후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만 12살 때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해 소년공 생활을 했다. 이 후보는 이 시절을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종종 회고했다.

 

시계공장에서는 스프레이 작업을 하다 후각이 상했고, 목걸이 공장에서는 황동선을 땜질하기 위해 납과 염산을 얼굴에 묻히는 것도 다반사였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왼팔이 끼며 골절상을 당해 팔이 구부러지는 평생의 장애를 얻었다.

 

이 후보가 선택한 가난의 탈출구는 ‘공부’였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장학금을 받고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고, 1986년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그는 ‘집사부일체’에서 “공장 다니고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까 학원 다녀와서 독서실로 가 안 졸기 위해 압정을 테이프로 책상에 붙여서 졸면 바로 피를 보게 했다”며 “졸다가 찔리면 잠에서 깼는데 그래서 제 참고서에 피가 많이 묻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판·검사 임용을 희망하던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인권변호사였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게 됐고, 이는 그가 성남으로 내려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이 후보는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해 이끌며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을 파헤치다가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을 하며 주민 2만명의 동의를 받았음에도 시의회 반대로 의료원 건립이 좌절되자 직접 시장이 돼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는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첫 출사표를 던졌으나 고배를 마셨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른바 ‘미키루크’로 알려진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과 함께 정동영 후보의 외곽 조직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2008년 총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성남에 민주당 공천을 받았지만 낙선했다. 수 차례의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도전해 당선됐고 2014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첫 시장 임기 시작 11일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부와 각을 세워가며 추진한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청년 배당 등 보편적 복지 사업은 타 지자체로 퍼져나가며 그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혁 추진을 비판하며 광화문에서 단식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박근혜 국정농단 와중에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하는 등 돌직구 행보와 대중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시키는 사이다 발언으로 견고한 팬덤을 형성하며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으나 의미있는 3위를 기록했고, 다음 해인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경기도정을 이끌면서는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자신의 기본 시리즈 정책 의제를 구체화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 교단에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며 강경대응으로 나서는가 하면, 도내 계곡 곳곳에 들어차 있던 불법 시설물들을 모두 철거·정비하는 등 저돌적인 행정가의 면모를 보이며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평가를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대권 재도전의 칼날을 갈아온 그는 올해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민주당 경선에서 과반 승리로 최초의 0선 집권여당 대선후보가 됐다.

 

[ 경기신문 = 박환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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