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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의 백령도 단상(斷想)-백령도 사곶 이 주부, 고 이승욱씨

 백령도 사곶 이 주부(李主簿), 고 이승욱(李承旭)씨

 

 도서벽지 의료 시설이 없던 무의촌(無醫村) 시절, 그 때는 속칭 ‘침쟁이’의 침술과 ‘엄마 손은 약손’이거나 ‘민간 요법’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백령도에 의료기관이 1960년대에 처음 생겼으니 그 이전에 환자의 진료와 치료는 어땠을까?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도 일상이 괴로운데, 과연 아픔의 고통에 장사가 있을까? 비록 정식 면허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닌 상황에서 의술을 펼쳤지만 당시 백령도에 ‘사곶 이 주부(李主簿)’의 집을 다녀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혹자는 이분을 위해 공적비라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곶 이 주부’ 고 이승욱씨 얘기다. 그는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1919년 출생했으며, 해방과 함께 백령도로 내려와 용기포에 선착했고 이후 사곶으로 이사했다. 호리호리하고 과묵한 편이며, 연화리 출신 11살 연하의 송맹녀 여사와 1946년 결혼해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고, 1980년 향년 61세로 타계했다.

 

비록 40년 전에 고인이 되셨지만 막내 이광인(51, 사곶 거주)씨를 만나 기억을 더듬었다. “부친께서는 이미 북에서부터 침술에 관한 전문성을 갖고 계셨으며, 남하 후 어렵고 힘든 시기에 백령도에서도 침술을 펼쳐 환자를 치료하셨다. 침 종류는 금침, 은침, 대침, 중침, 소침 등 재료나 길이에 따라 다양하게 구비했으며, 증상에 따라 길이를 달리해 진료하셨다. 밤이면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법, 새벽 내지 밤잠을 설쳐가며 환자를 돌보던 날이 비일비재했고 ‘죽을 놈을 살린 경우’도 허다하다. 사례비는 곡물이었으며, 군인의 경우 무료로 진료했다고 한다.”

사실 무면허 의료활동을 했기에 병원이 설립된 이후에는 병원에 의해 침구류를 압수당하기도 했으나 군 관계자가 다시 회수해 주어 침술을 이어갔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아마 명의를 증명하는 사례일 것이다.

 

그의 침술 활동은 도서벽지 의료 시설이 변변치 못하던 긴 세월 명의로 소문나 지역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현재는 명성마저 잇기 어려운 처지다.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며, 시대상을 반영한 관련 자료를 모아 보존할 필요가 있기에 백령도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주부(主簿, 종6품)는 벼슬 이름이기도 하지만 흔히 ‘침놓은 사람’을 말하는데, 대청도에도 곽 주부가 있었고 백령도에도 3분 정도 있었다고 한다./김석훈·백령중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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