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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상실의 사랑을 위한 송가

㊼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하마구치 류스케의 화제작 ‘드라이브 마이 카’는 몇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끈다. 무엇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 하나,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된다는 점(그의 전작 ‘해피 아워’는 장장 5시간28분짜리이다)이고, 거기에 오프닝 타이틀이 나오기 전인 인트로 부분이 물경 50분이나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평자(評者)들을 제일 깜짝 놀라게 하는 점은 그 50분이 하루키의 소설 단 몇 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류스케의 영화적 상상력이 하루키의 문학적 상상력에 못지않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문학을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류스케는 그걸 뛰어 넘으려 한다. 신세대다운 발상이다. 류스케는 1978년생, 이름하여 M세대에 가깝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50분을 할애한 하루키 소설의 분량은 이 작품이 수록된 ‘여자 없는 남자들’의 26페이지에서 29페이지까지 단 세 장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아내는 이따금 다른 남자와 잤다. 가후쿠가 아는 한 상대는 모두 네 명이었다. 최소한 정기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가졌던 남자가 네 명이었다는 얘기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아내가 죽은 후 고독하고 상실된 삶을 살아간다. 그를 괴롭히는 건 아내의 혼외정사가 아니라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고 그것이 혹시 자신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그녀는 왜 자기를 일상 속에서 배반했으면서도 늘 자신에게 돌아왔고 또 계속 사랑했을까. 그녀의 섹스를 질투했으면서도 왜 자신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을까. 하루키는 그에 대해 그다지 많은 답을 내놓지 않는다.

 

 

문학의 질문은 현상인 아닌 본질에 대한 것에 있으며 따라서 답은 다소 엉뚱하거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 구체적인 해답을 얻는 쪽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마구치 류스케는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추상과 관념에 접근하는 구체와 실재를 보여줘야 한다고 그는 보고 있는 것이다. 류스케는 그래서 극중 인물인 가후쿠의 아내에게 구체적인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젊은 남자와 정사를 벌여야만 했던 까닭)와 갑작스런 죽음의 과정, 그 스토리를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50분이란 시간의 소요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 지금부터는 영화가 가미한 이야기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기반을 했지만 상당 부분은 재창조됐다. 가후쿠의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는 각본가이다. 그녀는 원래 TV 연기자였다. 그러나 ‘어떤 사건’ 이후 배우 일을 그만 뒀다. 가후쿠는 여전히 연기 일을 한다. 그는 무대 배우다. 종종 연출을 맡을 만큼 중견 연기자이다. 그의 전문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이다.

 

가후쿠와 오토 사이의 ‘어떤 사건’은 바로 이들 사이에서 태어 난 딸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폐렴으로 죽은 일이다. 그 일이 둘 사이를 변하게 했다. 아이는 2001년에 죽었으며 때문에 살아 있었다면 이미 20대였을 것이다. 아내 오토가 죽은 것은 지금 현재 시점에서 보면 4년 전이다. 아내의 사인은 갑작스런 지주막하출혈이다. 원래 소설에서는 급격한 자궁암 악화였고 고통 속에서 죽었지만, 영화에서는 가후쿠가 집에 돌아와서 쓰러져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는 설정이다.

 

오토는 가후쿠가 집을 나서기 전,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얘기 좀 하자는 말을 했었는데 다 알다시피 부부가 ‘우리 얘기 좀 해’라는 말을 어느 한쪽이 꺼내 들었을 때는 그게 꽤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가후쿠도 오토가 ‘어떤 결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밤 일부러 늦게, 늦게 귀가했고 아내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가후쿠는 그 며칠 전 러시아 출장을 가다가 비행기가 연발되는 바람에 다시 집에 돌아왔는데 거실에서 다른 남자(젊은 배우)와 소파에서 섹스를 하는 아내를 목격한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내는 자신이 저지르는 배덕의 섹스를 남편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가후쿠 역시 오토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걸 다시 자신이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을 역시 오토가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오토가 밤에 들어 와 ‘우리 얘기 좀 해’라고 하는 것은 그 전반적 상황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가후쿠가 두려운 것은 또 한 번의 상실이다. 그는 딸을 한 번 잃었고 이번에는 어쩌면 아내를 잃을 수 있다. 그는 그녀가 바람을 핀다 한들 그게 상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서 여기까지는 밝힌다.

 

 

류스케의 영화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아내 오토는 더 이상 갑작스런 상실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며 차라리 상실을 주체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상실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관념을 주체적으로 실재화하면 무엇이 되는지,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알고 싶으며 그럼으로써 지나간 상실을 역설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남편을 버림으로써 이겨내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남편을 지극히 사랑한대도 그렇다. 아니 오히려 사랑하니까 더욱 그렇다. 자식을 잃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기가 힘들어질 수가 있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아내의 인격에 그러한 구체적인 스토리를 채워 넣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구체화가 마음에 들었다. 아내의 섹스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그것을 응원까지는 못하더라도 딴 남자와 섹스를 해서라도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옆에 붙들고 있고 싶게 만든다. 영화는 그러한 마음에 동조하게 만든다.

 

소설과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주인공 가후쿠가 약간의 음주와 시각 장애로 접촉사고를 일으키고 그래서 개인 운전기사가 필요해졌다는 설정에서도 차이를 벌린다. 영화에서는 음주를 없앴다. 그리고 접촉사고를 일으킨 것은 소설에서는 아내가 죽은 후이고 영화에서는 죽기 전이다. 어쨌든 그가 운전기사인 미사키(미우라 토코)를 만나게 되는 것은 히로시마 연극제에 올라가는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아내의 정부(情婦)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를 캐스팅한다.

 

히로시마 연극제에 올라가는 ‘바냐 아저씨’는 일종의 다언극(多言劇)이다. 극 중 연기자들이 각자의 언어를 쓴다. 영어 / 타갈로그어(필리핀 표준어) / 한국수어(手語) / 중국어 / 일어 등이다. 연극이라고 하는 것이 언어가 아니라 행위의 예술이고 소통의 궁극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연기자들은 상대의 언어를 알아들어야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 자체를 이해해야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 안에 독특한 액자 연극을 한 편 만들어 놓는데 그것 역시 하루키 문학의 경지를 뛰어 넘으려는 류스케의 또 다른 시도이다. 그리고 그게 참 좋다. 독특하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들어 냈다.

 

어쩌면, 가후쿠와 운전기사 미사키의 관계, 우정, 직업을 뛰어 넘는 이해와 소통의 문제는 그것을 또 넘고 넘어서는 문제이다. 솔직히 그 부분은 다소 작위적이다. 진부한 면이 있다. 가후쿠는 복잡한 심경을 이겨내기 위해 히로시마에서 미사키의 고향인 홋카이도의 어디론가로 꼬박 하루를 다녀온다. 미사키의 고향은 산사태로 사라진 상태다. 미사키 역시 어린 시절 이미 큰 상실을 겪은 터이다.

 

 

소설과 영화는 매우 다르다. 소설에서는 아내가 죽은 지 10년이 넘었고 가후쿠는(하루키처럼) 60대가 넘은 늙은 남자다. 하루키는 주인공을 꼭 자신과 비슷한 얼터에고로 묘사한다. 그게 좀 재수가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내가 죽은 지 꼭 4년째로 설정이 된다. 가후쿠의 나이도 40대 후반 정도다. 훨씬 낫다.

 

소설도 하루키의 작품 중 단연 최고급이지만 영화도 그에 못지않다. 영화가 매우 훌륭하게 자기 길을 갔다. 영화와 소설의 조우(遭遇)는 새로운 창조다. 어떤 작가끼리 만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류스케는 마치 하루키가 영화감독이 된 것 같은 존재이다. 일본영화계의 신인류라는 표현이 걸맞은 영화작가이다. 오랜만에 일본영화의 부활을 경험한 듯한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꼭 권하게 되는 작품이다. 아! 오토는 남편 가후키와 정사를 벌이며 연극 대본의 줄거리를 얘기한다. 칠성장어에 대한 얘기이다. 그 부분을 주목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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