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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32 - 음식주권(主權)의 인천

 조선시대 임금들은 틈만 나면 신하들에게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 그 때뿐 효력을 보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말았다. 1736년 영조 임금에게 검토관 조명겸이 감히 ‘지적질’도 해가며 술을 끊게금 했지만 오미자차를 마시는 것을 오해한 것이라고 영조는 쩔쩔매며 변명을 했던 실록을 보면 ‘소주 한잔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는가 보다.

 

소주는 원래 우리 것이 아니었다. 1258년 몽골의 정벌군이 아랍의 소주 제조법을 배워 일본원정 때 개성과 안동, 제주도에 양조장을 만든 것을 시초로 750년을 훌쩍 지난 지금 성인 한 사람이 1년 동안 90여 병을 마시고 있다.

 

금요일은 금주하는 날이라는 타령도 있지만 주5일 근무제 이후의 금요일은 정말 한잔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날이 됐다.

 

지고는 못 갈 술이고 술에 장사 없다고 했는데, 늘 주벽이 인사불성 직전까지 마시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술을 먹고 난 다음 날 해장에 콩나물국이나 북어국보다 ‘짬뽕’을 더 좋아하게 됐다.

 

저마다 속을 달래는 해장의 방법이 있겠지만 맵지 않은 ‘초마면’으로 시작해 이제는 내장이 술에 중독되어선지 매운 짬뽕이 제격이 됐다. 늘 이술 저술 짬뽕을 일삼는 술버릇, 그래서 해장도 짬뽕인가 싶다.

‘후루륵’ 소리를 내며 들이키는 ‘나가사키’ 스타일의 하얀 국물보다 얼큰 개운한 빨간 국물맛이 좋다. 하지만 먹으며 생각하는 짬뽕은 제국과 식민지로 서로 다른 20세기를 시작한 한·중·일 세 나라의 음식문화가 국경과 경계를 넘어 진화를 거듭해온 걸 생각할 때 짜장면의 국적은 한국, 인천이 발상지지만 짬뽕을 먹을 때마다 국적을 알고 싶어진다.

 

짜장면과 함께 인천(한국)에서 긴 세월을 사랑받고 있는 짬뽕의 국적은 짬뽕다웠다. 한 그릇의 짬뽕에는 동아시아의 근대화, 그리고 일제 식민지의 역사가 담겨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청·일전쟁 발발 두 해 전 1892년 청나라의 푸저우 사람 천핑순이 19세의 나이로 일본과 무역을 하기 위해 나가사키항에 도착. 자국 상인들의 먹거리를 위해 식당겸 여관 ‘시카이로’를 개업한 뒤 중국을 의미하는 ‘시나’와 ‘우동’을 결합한 ‘시나 우동’을 내놓으며 짬뽕의 초시를 알린 것이다.

 

일본인들이 시나우동을 즐겨 먹는 중국 사람들을 보자 중국의 인사말 ‘차폰’을 흉내 내 ‘잔폰’이라고 음식 이름으로 빌린 것이다.

 

하여 이 나가사키 잔폰은 화교들에 의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로 왔고, 잔폰이라는 이름이 매운맛으로 옷을 갈아입고 짬뽕으로 진화했다.

 

짜장면과 오늘날의 짬뽕은 떨어질 수 없는 짬짜면으로 식객들을 위한 변칙적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지만 사실 짬뽕은 일본에서 건너오며 짜장면은 인천의 화교들 손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는 것이 역사의 한 토막이 됐다.

 

이것을 주고 무언가를 받는 ‘give & take’, 경제용어로 말한다면 ‘등가 교환의 법칙’이 성립된 짜장면과 짬뽕 이제는 불가분의 함수를 누리는 역사가 있는 우리의 먹거리다.

 

사연(역사)이 많은 음식이 이 둘 뿐이겠냐만 ‘인천의 누들’ 하면 면 음식으로 냉면, 쫄면 등 서너 가지가 인천 최초, 최고의 100년에 등장 하지만 가속화하고 있는 세계음식 상업화로 인해 심각하게 위협당하는 음식 주권의 발상지 인천이 누들박물관까지 세운 마당에 훼손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어순화 운동으로 짜장면이 ‘자장면’으로 불려야 했고 짬뽕은 ‘초마면’으로 바꾸어 쓰던 때도 있었지만 도시 실감이 없는 순화 운동에 따라 부르면 제 맛이 느껴지지 않았던 짜장면과 온갖 야채와 해물이 듬뿍 들어간 빨갛고 얼큰한 진짜의 맛 짬뽕은 이제 제 이름표를 찾은 것 같다.

 

일차원적인 재미를 느끼는 ‘먹방’과 ‘쿡방’이 아직도 대중매체를 통해 유행이다. 넋을 놓고 보기보단 국가와 민족의 수난사가 깃든 음식의 인문학을 찾아 먹방을 즐겨보는 것이 남는 것 아닐까.

 

술을 떡이 되도록 먹은 다음 날의 해장용 짬뽕, 속 풀이로 제격이구나. 짬뽕만 먹으면 코로나를 이겨내는 꿈, 꿈은 꿈대로 좋은 것. 물러나거라 짬뽕 나간다./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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