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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다음 대통령이 스페셜리스트가 되면 안되는 이유

 

아마도 이 지면을 통해서 한번 얘기한 바 있을 것이다. 일본 석학 다치바나다카시 얘기다. 『그는 도쿄대생은 죽었는가』라는 저서에서 “세상은, 결코 스페셜리스트가 지배하지 않는다, 제너럴리스트가 이끈다”고 했다. 이 말을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끼는 때도 없다.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 씨가 그 점을 상징처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한국사회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기는 중이다.

 

윤석열 후보와 같은 스페셜리스트는 자신이 필요에 의해 쌓은 지식 공학의 범주에서만 세상을 보고, 또 잣대를 만들어 낸다.(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이다. 사모펀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조국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주입돼 있었다.) 스페셜리스트들은 대개 수직주의자들이다.(주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급과 계층에 대한편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자유를 알지 못한다는 발언.) 반면 제너럴리스트는 광범위한 지식을 구하려 노력한 덕에 그래도 세상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제너럴리스트들은 응당 수평주의자가 되며 세상에서 평등과 함께 분배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대체로 남의 말을 많이 듣거나 그러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사람을 지식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그의 국정 지지도가 비교적 건강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고 본다.

 

CBS 라디오 大기자 출신으로 현재 YTN의 ‘뉴스가 있는 저녁’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앵커를 맡고 있는 변상욱 씨는 최근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란 에세이를 냈다. 마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이념의 균형론을 얘기하는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연상될 만큼 온통 명언과 경구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특히 그는 수십 년 간의 방대한 독서량을 보여 주듯 수많은 작가, 예술가, 학자의 책들을 인용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일종의 과학 철학에서부터 에밀리 디킨슨의 시, 피카소의 예술론,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전사 후다 샤으라위, 미국의 진보주의자 하워드 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실패했지만,사회주의 농업경제의 부흥을 꿈꿨던 줄리어스 니에레레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국경은 끝간 데가 없다. 톰 행크스가 제작한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 우리 영화 ‘벌새’ 등등 영화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피력한다.

 

정치적 지도자가 그처럼 광범위한 지식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겠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격 요건을 다소 완화시켜 준다 한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1) 청년기에 인문과학에 대한 접근성이 좋았던 사람이거나 그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던 사람이어야 한다. 2)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틈틈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3) 역사/ 철학/ 사회학/ 문학/ 소설/ 영화/ 연극/ TV 드라마/ 컴퓨터 게임 등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버리지 않고 최소한 그러한 문화예술적 활동을 하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혹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1야당이라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잦은 말실수, 흔히들 얘기하는 망언을 일삼는 것은 위의 1, 2, 3 항목에 다 비껴 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후보는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릇 국가 운영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고도화/ 전문화/ 분업화돼야 함은 물론 무엇보다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야 한다. 후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국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들 떠들어 대는 이른바, 국격(國格)이 만들어지지가 않는다.

 

프랑스 현대영화를 대표하는 브루노 뒤몽의 신작 《프랑스》는 유명 여성 앵커 ‘프랑스 드뫼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주인공 이름을 굳이 ‘프랑스’로 했고 그걸 또 제목으로 갖다 썼을까. 브루노 뒤몽 같은 자연주의자들은 알고 보면 면도날 같은, 무엇보다 매우 구체적인 일상의 에피소드를 동원해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드러낸다. 이번 작품을 가지고는 한 저널리스트와 그녀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이라는 설정을 통해 지난 20년간의 프랑스 현대사회를 되돌아보려 한 것으로 느껴진다. 프랑스는 20년 동안 니콜라 사르코지(그는 내무장관 시절인 2005년 파리 북부 빈민가 방리유의 소요사태를 폭력적 경찰력으로 진압했고 그것으로 우파의 지지를 받았다.)에서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었다.)까지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유능한 인재로 차기 대통령감이라 여겨졌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IMF 총재 자격으로 뉴욕에 갔다가 호텔 메이드를 겁탈하려다 정치·사회적으로 멸종됐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젊은 대통령이 마크 롱이었던 바, 그에 대해서도 다소 신통찮아 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브뤼노 뒤몽은 영화에서 ‘이제 진보는 없어. 이상 따위도 없어.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라는 것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없어’라고 일갈한다. 그저 현실을 충일하게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토론이라고 하는 것이 1회 정도는 이런 인문학적인 수다로 질의응답을 채워 보면 어떨까 싶다. 후보들을 경쟁적으로 앞세워 TV 오락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 쇼에서 노래나 춤을 추게 하지 말고. 그 무슨 꼭두각시 모양새인가. 그런 아이디어는 과연 누가 내는 것인가. 좀 세련되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 정치가 천민화하는 ‘꼴’을 보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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