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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의 백령도 단상 - 산 넘고 바다 건너던 중.고교 시절(상)

산 넘고 바다 건너던 중·고교 시절(상)

 

 1950년 6·25 전쟁 이후 이웃한 황해도에서 대규모로 피난민이 몰려와 백령도가 사람으로 북적였던 시절. 기본적인 식량조차 구할 수 없어 구호품에 의지하거나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겼다.

 

섬이었지만 낙후된 어법과 어구, 간척 이전의 제한된 농경지에 3만~4만이 살았던 과밀도서지역이었다. 분단의 접점에 있던 지리적 위치와 서해 최북단 섬이지만 부모의 향학열은 남부럽지 않은 곳이었기에 이제는 빛바랜 기억 속에 잔상을 모아 1960년대 중·고교 시절의 등·하교와 학교의 모습을 담아 본다.

백령도 내 유일한 중·고등학교인 백령중·고. 한때 설립의 위치 문제로 지역사회는 떠들썩했다. 면소재지인 진촌이냐 지역의 중심지인 북포리냐 놓고 설왕설래했던 것인데, 결국 외4리(면소재지인 진촌리를 제외한 백령도 주변 4개 리를 통칭해 부르는 토착어)의 학생을 배려한 북포리로 결정돼 1955년 이곳 신화동 감친골에 개교했다.

 

J형은 1960년대 백령중학교 4회, 백령고등학교 3회 졸업생으로 중학교는 1961년 2월, 고등학교는 1964년 2월 졸업했으니 재학 기간은 1958년부터 1963년까지였고, 지금부터 약 60년 전의 일이다. 집은 백령도 장촌(長村).

 

초등학교는 당시 마을에 있는 남포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고등학교 6년 간은 매일 1시간 반 정도 왕복 2~3시간씩 걸어 다녔다. 5남 2녀의 장남이었기에 동생들 보살피고 집을 나서는 것은 마지막 순번이었다.

 

등굣길은 집에서 석장골산을 오르기 전까지 20여 분 정도 걸으며, 이후는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정상의 잿머리재를 넘기까지 가파른 등굣길에 동네 학동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잿머리재에 올라 편 가르기로 하는 게임이나 장난도 치며, 때론 달래를 캐거나 배고프면 진달래꽃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를 갈지 말지에 대한 운세도 정하곤 했다. 한번은 친구들과 모의해 결석을 했는데, 선생님의 엄격한 심문을 통해 주동자로 밝혀져 김○규 선생님에게 엄청나게 혼난 일도 있었다. 이렇게 잿머리재는 학창시절 사연이 많았던 인생 고개였던 셈이다. 이 고개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중3~고1 때로 기억한다.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은 평소 말분가루에 보리쌀을 섞은 밥이었고, 반찬은 김치 하나다. 보릿고개에 해당하는 봄철, 평소와 달리 어머니는 (통)밀밥 도시락을 싸 주셨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같이 창피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도시락을 잿머리재 나무 밑에 몰래 숨겨 놓고 학교로 갔다.

 

그날 마침 잿머리재에 불이 났고, 산 아래 남포초등학교 학생들이 산불을 끄러 올라왔다. 초등생이었던 셋째 동생이 불을 끄러 올라왔다가 밀밥으로 채워진 형 도시락임을 발견하고 산불을 끈 다음 어머니에게 갖다 드린 것이다. 귀가 후 혼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말씀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김석훈·백령중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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