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39. 을축년 대홍수(乙丑年大洪水)

 

역사 속에서 기록적인 홍수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노아의 홍수와 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 곳곳에 전설로 전해온다. 불이 나거나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흔적이라도 남지만 홍수가 나면 흔적도 없다. 이번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현실적으로 벌어졌던 대홍수 이야기이다.
 
1925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사이에 우리나라는 악몽 같은 큰 홍수를 네 차례나 치렀다. 이 해가 을축년이어서 ‘을축년 대홍수’라고 부르는데, 특히 1차와 2차의 물난리가 한강 일대에 큰 피해를 주었다.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가옥 유실 6363호, 가옥 붕괴 1만 7045호, 가옥 침수 4만 6813호에 이르렀다.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해당하는 1억 300만 원의 피해액을 냈고, 이 홍수로 풍납토성이라든지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존재가 드러났다.

 

 

 

 


1차 홍수는 태풍이 7월 11일과 12일에 300∼500㎜의 호우를 뿌려 한강·금강·만경강·낙동강 등이 범람했다. 연이어 새로 발생한 태풍이 황해도 북부 근해를 지나면서 그 오른쪽 반지름에 들어간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16∼18일까지 계속 내린 비의 양은 한강과 임진강 분수령 부근에서 650㎜에 이르면서 강물은 크게 범람하였다. 18일 한강의 수위는 뚝섬 13.59m, 인도교 11.66m, 구 용산 12.74m로 사상 최고기록을 남겼고, 한강 일대는 모두 침수되어 망망한 진흙바다를 이루었다.

 

 
하남지역은 12개 마을 중 8개 마을이 침수되고 820호 중 600여 호 이상, 3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정동 73호와 선동 254호, 둔지섬이 전멸하고 말았다. 292명 몰사, 297명 실종, 264명 부상했다. 7월 18일 오후 1시부터 6시 30분까지 내린 호우가 물폭탄이었다. 18일 조그만 지붕 위에 올라 떠내려가던 30여 명이 구조됐는데 17명이 선동 주민들이었다. 7월 20일에는 수백 명의 주민이 배 위로 피난했다가 배가 부서지면서 8명이 떠내려가는 지붕 위에서 구조되었다.

 

둔지 살던 이준식은 봉은사 스님들에게 구조됐는데, 그 은혜를 보답할 방법을 물으니, 사람 하나를 구할 때 마다 쌀 한 가마니를 시주하면 그것으로 이재민을 돕겠다고 하여 쌀 13가마를 시주했다. 봉은사 스님들이 이준식 외 13명을 더 구출했다는 이야기는 故 이철재 하남문화원장이 남긴 증언이다.
 


당정섬에는 조씨, 이씨, 진씨, 지씨 등이 살던 마을인데, 섬이 사라졌다. 1912년 일본이 조사한 당정섬의 면적은 밭이 15만 3145평, 대지 1만 628평, 임야 7만 1154평, 총계 23만 4927평이었다. 이 섬이 사라졌다.

 

1900년 가을에 분원에서 도자기 굽는 일을 감독하던 지규식이 당정섬에 사는 이선달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게 되면서, 10월 19일 혼례를 앞두고 납폐를 보냈는데 신부의 외조부가 위독하다더니 곧 별세했다. 신부 집에서 다음 달로 혼례를 연기하자고 하니, 지규식은 반드시 이달 19일에 결혼하자고 편지를 보내면서 당정섬에서 어려우면 분원리로 신부를 보내라고 하였다. 신부댁에서 12월로 미루자 했는데도 굳이 가마를 보내 분원리로 데리고 와서 19일에 혼인식을 치렀다. 다음 해에 며느리가 아프니 친정에서 와서 며느리를 당정섬으로 데려갔다는데 그 며느리는 어찌 되었을는지. 25년 세월이 더 지나서 을축년 대홍수가 터졌으니 무사 하였기를 …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