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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진실을 모르면 저항도 없다

51. 매트릭스: 리저렉션 - 라나 워쇼스키

 

솔직히 ‘매트릭스’ 시리즈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게 봐도 무방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나왔다한들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이 시리즈가 처음 나온 것이 1999년이다. 20년이 넘었다. 시간까지 오래됐다. 정확한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마저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4편이 인기를 얻지 못한 것, 더 나아가 나오느니만 못한 속편이었다는 둥의 비아냥을 받았던 것, 극장 안에서 몇 명 안되는 관객을 확인하는 건 마치 시리즈에 대한 부관참시를 하는 수준이라는 둥의 극악한 비난의 글까지 나왔던 것은 어쩌면 광범위한 의미로서의 무지 때문이다.

 

‘진실을 보지 못하면 저항이 없다’. 이번 ‘매트릭스4’에 나오는 대사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들은 ‘매트릭스’ 시리즈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관객 폭발=저항(지금과 같은 OTT시대의 극장에서)’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

 

슬라보예 지젝 같은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심리학자는 ‘매트릭스’ 시리즈를 철학자들에 대한 로르샤흐 검사라고 말한다. 로르샤흐 검사는 잉크 얼룩을 보여 주고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정신분석의 용어이다. 철학자들은 이 영화로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 불교와 기독교,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한다. 윌리엄 어윈 등 철학자들은 결국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Matrix & Philosophy’와 같은 책을 통해 이 영화가 얼마나 깊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가를 설파하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중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아직 매트릭스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게 한 것이 지난 3편까지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4편은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매트릭스 안에서 여전히 살고 있되, 오히려 그곳에서 누리는 거짓의 안락함을 선택하고 있으며 실제 세계로의 탈출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4’는 그 이전의 작품에 비해 훨씬 더 정치학의 의미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약을 선택할 것인가. 빨간 약인가, 파란 약인가.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알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행복인 것일까.

 

매트릭스 1, 2, 3에서 고도로 발달된 AI인공지능에 맞서 싸우던 전사들 상당수가 사망했다.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도 그랬다. 이들은 오랫동안 AI가 구축해 놓은 가상세계=매트릭스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네오의 가상세계 속 이름은 토마스 앤더슨이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밤에는 해커인 인물이었다. 때는 서기 2199년. 그런데 어느 날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란 인물을 만나 빨간 약을 먹고 나서부터 모든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가상세계와 달리 리얼 월드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는 점점 AI에 맞서 싸우는 저항의 집단 ‘시온’의 지도자가 된다.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네오를 ‘그’라고 믿는다. 네오(NEO)의 영어 이름을 거꾸로 읽으면 그(ONE)가 된다. 그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여인 트리니티(TRINITY)는 삼위일체란 뜻의 이름의 인물이다. 저항 조직 시온은 시오니즘을 가리킨다. 영화는 애초에 상당 부분 기독교적 모티프를 지녔던 셈이다.

 

이번 ‘매트릭스4’에서 이들 주인공 모두가 부활한다. 부제 ‘리저렉션’이 가리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어떤 여인이 경찰에 쫓기는 와중에서도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을 공격하는 요원(시리즈 전편에 나오는 스미스라는 이름의 복제인간들)중에 모피어스가 있음을 알게 되고 힘을 합친다. 둘은 네오가 살아있다고 믿는다. 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트릭스와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가상세계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그는 현재 아주 유명한 게임 프로그래머이자 개발자이다. 그가 만든 세계적 게임이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다. 그는 종종 겪는 환상의 세계(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실이 사실은 다 컴퓨터가 조장해 낸 거짓의 공간이자 존재들이라는 내용의)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정신분석 애널리스트(닐 패트릭 해리스)는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얘기하면서도 계속 그에게 파란 약을 처방해 준다. 파란 약을 먹으면서도 토마스 앤더슨은 자꾸 환각을 본다.

 

 

회사는 그에게 ‘매트릭스’ 게임 시즌4를 만들라고 종용한다. 회사 사장은 투자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4편을 만들지 않으면 모든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말을 전한다. 토마스 앤더슨은 동료들과 4편 기획회의를 한다. 동료들은 매트릭스 4편의 콘셉트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이들은 매트릭스 시리즈의 특징 가운데서도 으뜸이 바로 ‘모호함’에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소리친다. “사람들이 이 게임을 하면서 이래야 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매트릭스의 내용이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말이지” 그 과정에서 토마스 앤더슨의 정신착란은 더욱 더 심해진다. 그는 심신이 지칠 때마다 카페를 간다. 거기에는 그가 몰래 흠모하는 여인 티파니(캐리 앤 모스)가 다닌다. 그녀는 애가 셋인 유부녀이다. 그녀는 토마스 앤더슨과 수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이름이 왜 티파니인지 말한다. “저의 어머니가 오드리 헵번을 좋아했어요.” 오드리 헵번의 가장 유명한 영화가 1961년 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티파니 역시 토마스 앤더슨처럼 다시 가상세계의 삶에 빠져서 살고 있다.

 

그러던 중 토마스 앤더슨은 또 다른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를 만난다. 앤더슨은 그가 건네는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다시 빨간 약을 먹는다. 그리고 자신을 지금의 가상세계에서 빼내려는 저항집단의 팀장급 리더 벅스(제시카 헨윅)를 따라 실재하는 세계로 돌아온다. 그는 왜 자신이 죽지 않았는지, 왜 온몸에 이런 저런 기계장치를 단 채 AI에 의해 정신이 지배당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는 세상을 구해 내는 데 있어 자신과 생체 에너지를 합쳐야만 하는 트리니티를 구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의 연인이다. 네오는 트리니티를 깊이 사랑한다. 큰 부상을 입고 결국 죽은 줄 알았던 트리니티 역시 AI가 살려낸 후 네오처럼 티파니라는 가상의 인물로 ‘사육’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4’의 얘기들은 상당히 모호하다. 헷갈린다. 꼼꼼히 보지 않으면, 앞선 3편을 기억 속에 되살려 내지 않으면 얘기의 실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것이 실제 세계의 얘기이고 어느 것이 가상세계의 얘기인지 분간이 안 간다. 가상세계도 한 가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상의 가상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그 경계가 어디이며 그것을 가르는 지점은 과연 어디인가. 매트릭스 시리즈가 가장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또, 어느 쪽이 사실인가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것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기도 하다. 그 헷갈림 자체가 매트릭스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기억이 가상인가, 기억에 기반한 현실이 가상인가. 그게 그거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다소 소모적으로 보이는 의식 속의 철학적인 논쟁, 그것의 결론에 스스로 도달해가는 자유의 지적 관점 등등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화두인 셈이다. ‘매트릭스’의 철학은 결국 인간의 무한한 자유의지가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며 그 자유의지 자체가 선을 향해있다는 긍정적 세계관에 있다. ‘매트릭스’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리는 척, 사실은 그 반대의 지점을 향해간다. 파란 약을 먹을 것인지, 빨간 약을 먹을 것인지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약을 ‘선택’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

 

선택이라는 우리의 실존적 행위가 전제되는 건 실재 세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거나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재 세계가 존재한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가상세계를 만드는 AI에게) 저항 할 수 없다’는 얘기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국 진실(빨간 약)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고 주인공 네오가 수없이 회의하고 의심함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느 정도 예정돼 있는 일이기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마치 기독교의 예정설(豫定設)과도 같이.

 

주옥같은 대사와 내용이 천지에 깔려있는 듯한 영화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진법으로 보고 있다는 식의 얘기가 대표적이다. 0과 1. 진실과 거짓. 나와 너. 남과 여. 현실 아니면 가상. 이분의 시선으로는 삶의 진실, 세상의 구원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매트릭스4’의 메시지이다. 세상의 모호함에 대한 비언어적 깨달음, 정신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왜 살아있는 시체 취급을 받았는가. 사람들이 아직도 파란 약을 먹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