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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41. 수원화성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수원 화성의 성곽과 강산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고, 성곽의 누대와 초목은 임금의 행차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정을 표현한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꽃이 핀 산과 버들이 늘어진 냇가의 뜻을 취한 것이다. 화성에서 용의 머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아래 연못을 용연(龍淵)이라 한다.
 


정조16년(1792) 겨울에 수원성을 쌓을 때, 임금은 다산 정약용이 부친 상중인데도 불구하고 축성 설계를 맡겼다. 임금이 ‘고금도서집성’과 ‘기기도설’을 내려주면서 무거운 것을 끌어당기는 인중법(引重法)과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기중법(起重法)을 연구하게 하므로, 다산이 이에 ‘기중가도설(起重架圖說)’을 지어 올렸다. 활거(滑車)와 고륜(鼓輪)은 작은 힘을 써서 큰 무게를 옮길 수 있었다. 성 쌓기를 마친 뒤에 임금이 이르기를 "다행히 기중가를 써서 돈 4만 냥의 비용을 줄였다"하였다.


 


처음 화성을 쌓으려는 논의가 있을 때 예산과 공사 기간 등에 대한 어려움이 예상되어 반대가 심하였다. 그런데 다산의 설계로 축성을 마친 후에 통계를 내니, 돌덩이 18만 개가 들어갔고, 총 공사비는 원래 예산보다 4만 냥을 절감하여 87만 냥이 들어갔다. 큰 돌 하나 옮기는 데 소 40마리가 동원됐고, 거중기를 사용함으로써 공사 기간은 8년이 단축되었다.
 
특히 옛날에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부역으로 추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옛날 조세제도는 곡식이나 특산물을 바치는 경제적 부담 뿐 아니라 노동력을 국가에 바치는 부역이 있었다.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때는 스님들이 동원되었는데 수원 화성을 축성할 때는 부역을 시키지 않고 정조임금이 축성예산을 주어 ‘노임 성과급제’를 실시한 것이 특징이다.
 


화성의 여러 곳이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방화수류정이다.
방화수류정 상량문에는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듯 높은 담장에 튼튼한 자물쇠 형상이요, 새가 놀라고 꿩이 나는 듯 성(城) 위의 망루는 천문을 관측할 자리니, 한 지방의 수려한 경관 차지해 만세토록 태평함을 즐길 만하네" 하고, "만 송이 부용은 뭇 봉우리가 날아오르는 춤을 바치는 형상을 하고, 천 줄의 버드나무는 기다란 내에 그물 그림을 펼치는 풍광이로세. 유수부(留守府) 전체를 독점한 형승이요, 푸른 연못에 둥근 거울 굽어 보이니 특별히 별천지의 풍광을 펼친다네" 하였다.
 
정조 임금이 방화수류정에 와서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댓구를 짓게 하였다. 성(城)을 순시하고 방화수류정에 이르러 활을 쏘아서 세 번 정곡을 맞히고 무(武)를 숭상하는 뜻을 보였다.
 
화홍문(華虹門)과 함께 방화수류정의 절경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각자의 흥취대로 시를 짓고 싶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거나, 술꾼이면 술 한잔 하고 싶어진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셀카라도 찍고 지나게 된다.
 


1965년 3월부터 성남, 용인, 수원 지역 노인들이 월 1회 모임을 가지고 포은 정몽주와 정암 조광조 같은 선현의 학문을 강론하면서 시를 창작하기를 10년 넘게 이어왔는데 방화수류정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시를 지은 것이 여러 수 남아 있다. 이 모임은 판교기로회로 부르다가 참여 회원의 거주지역이 넓어지면서 낙생시사(樂生詩社), 한남기로회로 바뀌었다.
 
기로회의 대표격인 이억녕의 시 한 수를 소개한다.


"우리 모임 총출두, 방화정 위에서 풍류를 짓네. 북에서 흐르는 7칸 물은 화홍문을 머리에 이고, 팔달 남문은 옛 누각에 의지했네. 훈훈한 기운이 더하니 하늘도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보리밭은 가을이네. 성안 옛 유적은 웅장하고, 이에 시 한 수를 읊노라"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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