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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의 아르케] 주역(周易)은 점서인가?

 

최근 김만배 씨의 녹취록 일부가 공개됨으로써 다시 ‘천화동인’ ‘화천대유’라는 말이 호출되었다. 둘 다 주역에 나오는 괘로서 하늘과 불의 기운을 받은 동인이 큰 부를 성취한다는 뜻이다. 문학동인이라고 할 때, 이 동인도 천화동인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투기꾼들이 작당하여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해괴하다. 윤석열 후보와 관련해서는 역술인과 무속인까지 등장해 주역이 마치 점 보는 책인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겠다.

 

주역은 점 보는 데서 출발했지만, 미아리 ‘철학원’에서 돈 받고 일회성으로 점을 쳐주는 것과는 달리, 기록해두었다가 맞는지 연말에 확인을 했다. 한자의 기원이 된 은(殷) 나라의 거북점은 주술에 그쳤지만, 시초(蓍草)와 서죽(筮竹)으로 친 점은 숫자로 표현했다. 수는 통계와 수리(數理)로 진화하면서 주역이 되었다. 나아가서 주역은 학문(易學)이 되고, 경전(易經)이 되었다. 주역은 이렇게 점치는 데서 시작했지만 우주론 철학이 되고 실천윤리가 되었다.

 

주역은 자연철학이요, 과학이다. 주역의 과학적 세계관은 서양의 물리학자들이 뒷받침해준다. 오늘날 반도체 전자혁명과 인터넷의 기초가 된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덴마크의 닐스 보어는 주역에 심취해 손수 태극문양으로 디자인 한 옷을 입고 다녔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때도 그 옷을 입고 참석했을 정도였다.

 

주역의 괘는 음과 양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주와 세계는 양과 음의 대립, 즉 건(乾)과 곤(坤)의 대립으로부터 생긴다는 것. 음과 양은 8괘를 낳고 나아가서 64괘로 정착했다. 64괘는 우주만물의 변화와 인간의 운명을 설명한다.

 

양자역학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기본으로 한다. 원자는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인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주역의 세계관과 상통하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변화(易)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대립으로부터 생긴다.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원자에서 전자 하나의 이탈은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주역과 양자역학은 이렇게 세계관이 닮았다. 통계와 수리과학이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주자(朱子)는 주역으로 점을 치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위하여 남용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이나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주역은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지침이다. 그런데 김만배 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쉽게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동이(同而)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역의 ‘천화동인’으로 호칭한 것이다. 불화(不和)로 귀결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주역은 천화동인과 화천대유에 이어서 겸손과 예(豫)를 강조했다. 자신을 낮추고, 미리 경계하라는 것이다. 사리사욕에 취하면 결국 실패한다는 교훈이다. 공자는 『계사전』에서 동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난초와 같이 그윽한 풍취가 있다.” 무늬만 천화동인이었던 자들이 각기 다른 마음을 품었으니 악취를 풍기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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