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대청도 단상 - 때고 남는 섬, 대청도(상)

 백령·대청·소청도로 이뤄진 대청군도는 섬마다 별칭이 있다. 백령도는 ‘먹고 남는 섬’이요, 소청도는 ‘쓰고 남는 섬’, 그리고 대청도는 ‘때고 남는 섬’이다. 1950~60년대 집집마다 달구지나 지게 지고 땔감 구하기가 식량 못지않게 중요했던 시절, 섬 가운데 위치한 삼각산(해발 343m)과 사방으로 뻗은 산줄기는 겨울철 집안의 온기를 채워주고도 남았기에 부르는 별칭인 것 같다.

 

연탄을 거쳐 보일러, 가스에 이르기까지 난방시설이 좋아졌지만 춥고 눈 많던 겨울철 산속에서도 어깨 펴고 살 수 있었던 원천, 대청도의 과거 땔감 준비는 어떻게 했을까? 50~60년 전 대청도의 땔감 문화에 대해 알아본다. 이 섬 인구는 2021년 12월 기준 721세대 1179명이다.

 

◈ 땔감 구비를 위한 준비물은 무엇이 있을까?

 

준비물은 낫, 톱, 숫돌, 칡줄기, 도시락, 지게, (가죽)장갑 등이다. 나무를 하는데 제일 중요한 낫은 대장간에서 육철을 쳐서 만든 조선낫(일명 우멍낫)으로 날은 두껍고 무겁다. 곡식을 베는 평낫(일명 왜낫)과는 다르다.

 

따라서 대청도 마을마다 대장간이 한 곳씩은 있어서 제작 의뢰했거나 인천에서 구입하기도 했고, 장사꾼이 사다주기도 했으니 집집마다 보통 3~4개의 낫이 있었다. 현재 가장 적은 인원이 거주하는 모래울동(대청4리)에도 대장간이 있었다고 하니 대부분 마을에 한 곳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칡 줄기는 땔감을 묶어 단을 만들기 위한 노끈 대용으로 사용했는데, 보통 2m씩 끊어 미리 준비했다. 이 칡 줄기는 쓰기 이틀 전부터 물에 담갔다가 사용하며, 그 이유는 칡이 물을 먹어 질겨서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스무 줄을 한 묶음으로 만들었고 사용하는 칡 줄기 묶음 수를 통해 땔감의 양을 측정했다.

 

지게는 육지 것과 비슷한 형태지만 차이점은 다리가 짧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짊어지고 산에서 움직일 때 바위나 다른 장애물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지형에 맞게 지게의 변형이 이뤄졌으니 대청도 같은 산간 지형은 다리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장갑은 한 손으로 땔감을 움켜쥘 때 필요한데 흔히 가죽장갑 이전에는 헤진 옷을 이용해 만들어 썼다. 가죽장갑은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 땔감 구비 시기와 운반 도구, 땔감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 준비는 잎새가 떨어지기 전인 9월 중하순부터 시작되며, 특히 나뭇잎의 화력이 크기 때문에 낙엽이 지기 전에 했다.

 

땔감은 베고 난 후 곧장 운반하는 것이 아니다. 약 한 달에서 달포 정도 묶은 채 바짝 말린 다음 10월 말이나 11월 초 입동 즈음에 운반했다. 운반 수단은 섬이지만 지형 조건에 따라 동네별로 다르다. 농경지가 있던 내동 일대는 소달구지를 이용했지만 모래울동 같은 산지 속 마을은 오로지 지게에 의존했다.

 

땔감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아궁이(방) 개수와 집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안방과 사랑방 등 2~3개의 방이 있는 집이라면 보통 600~800단이 필요했다. 많게는 900단부터 적게는 200~300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니 처한 상황에 따라 달랐다. 흔히 안방 아궁이는 밥 솟을 걸어 난방과 식사를 준비하고, 사랑방은 큰 무쇠솥을 걸어 소여물이나 돼지죽을 끓이면서 온돌을 달궜다.

 

지형에 적합한 도구, 시기별 일의 순서, 상호부조의 품앗이 등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곳곳에 스며있음을 알 수 있고, 이 슬기로움은 경험과 구전으로 이어졌다./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