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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요즘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나는 박인환의 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에서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잘 아는 시인 후배 이름이 ‘인환’이다. 성은 추가이고, 호는 추산(秋山)이다. 그런 그가, 가족을 잃고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고 신음하고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주 한옥마을로 당장 오라는 것이다. 오지 않으면 자기가 걸어서라도 데리러 오겠다면서.

 

전주역에 내리면 첫 마중 길에는 프랑스 파리풍의 붉은색 1000번 버스가 한옥마을로 모셔다 드리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코앞에 전동성당이 있다. 맞은편은 경기전이다. 좀 더 걷다 우회전하여 전주천변 쪽으로 100여 미터 가면 최승범 시인의 '고하 문학관'이 나온다. 이어서 천변 쪽으로 더 내려가면 (사)전주한옥숙박체험협회 이사장으로서 이름은 인환이요 호가 추산이라는 시인이 운영하는 업소로써 2층 한옥집이 있다. 명당 터 이마의 대문에는 “한옥의 별” ⸀금원당(琴園堂)」 ‘전주시 지정 한옥마을 우수업소’라는 동판이 붙어 있는데 별 3개가 새겨져 있다.

 

추산을 만난 그날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안마소로 데리고 갔다. 육체적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시골집으로 가서 술잔을 기울이기 전 그는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책 표지 상단에는 '단란한 삶을 꿈꿨던 김0삼 반생기'라는 소제목에 『칼바람 몰아치는 벼랑에서』라는 범상치 않은 책이었다. 그 책 주인은 새해 첫날 안성시 공도읍 M회사 대표로서, 예약을 하고 와 추산의 금원당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대표는 주인인 추 시인과 인사를 하고 숙소인 방으로 들어서니 손님에게 드리는 주인의 시집이 놓여 있었던 것. 손님으로서의 대표는 예사롭지 않은 문화 탓이었을까 김0수 대표는 밖으로 나가 막걸리를 사 가지고 왔다. 객과 주인은 막걸리로 하여 마음속으로 우정의 문이 열리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김 대표는 말했다. 부친이 광주항쟁 당시 광주에 남파된 북한 공작원이라는 날조된 누명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7년 복역한 뒤 출소해, 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고. 그 내용을 엮은 책이 지금 이 책 『칼바람 몰아치는 벼랑에서』라고 말하면서 책을 주었다는 것. 막걸리가 바닥나고 기분이 업그레이드된 추 시인은 대표에게 그동안 출간한 시집 두 권을 더 선물했다. 책으로 인사 나누는 영적 하모니가 일렁이는 전주 한옥마을의 밤하늘에는 유난히 별이 빛났다.

 

대표는 돌아가서 추시인 시집을 출판한 회사로 전화를 걸어 200권을 주문했다. 사원들에게 주겠다는 뜻이었다. 출판사 사장의 연락을 받은 추 시인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시집을 택배로 보냈다.

 

그리고 책값을 사양하는 그에게 대표는 숙박업소 예약 사이트에서 본 계좌로 송금을 해왔다. 지금 한옥은 옛 한옥과 다르다. 제주도를 비롯하여 한옥호텔이 들어서 한옥의 정취에 깊숙이 빠져들어 유유자적 영혼의 샤워를 즐겨가면서 바닷가의 바캉스 대신 한옥의 ‘옥(屋) 캉스’를 즐기고 있다. 요즘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편하게 쉬어가는 공간에 시집이 놓이고 있다. 그리고 주인과 고객과의 책 선물과 함께 막걸리도 나눠 마시며 서로의 삶에 맑은 행복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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