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로 인해 열 받는 지구 안에서 웃고 살자고 한다면 정신이 외출해 버린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웃어보자고 '강의 유머 기법'을 읽다 보니 '사람을 졸게하는 죄' 라는 테마가 있다. 그 내용이다. 늘 교통법규를 위반하던 총알택시 기사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목사님이 동시에 천국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목사님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총알택시 기사를 칭찬했다. 기가 막힌 목사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하나님이 말하기를 “너는 늘 사람들을 졸게 했다. 하지만 총알택시 기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하나님!”하고 늘 기도하게 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깨우고 나의 길을 가기 위한 심신의 워밍업으로 이른 아침이면 헬스장으로 달려간다. 가는 길에는 한 대학 생환관이 있고 그 산자락 아래로는 도로가 있다. 그 길 가운데는 양쪽 도로를 지켜주는 분계선에 수십 년 된 플라타너스가 우람하고 듬직하게 줄지어 서 있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삶이 버거웠는지 얼굴에도 몸에도 검은 구멍이 뻥뻥 뚫렸다. 가지는 떨어져 나가고 위로 뻗은 줄기도 꺾어져 버린 그대로이다. 하체만 세월 앞에 당당한 모습이다. 얼마나 처절한 삶이었으면… 하고서 나는 내 삶의 안을
이 더위에 난 꽃이 피었다. 이른 봄에 분갈이를 해서 그럴 것이다. 먼저 올라온 꽃대는 시들해졌다. 난을 선풍기 옆으로 앉히고 차분히 들여다본다. 꽃은 꽃인데 난 꽃이라서인지 코와 눈과 가슴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신석정 선생의 수상집 ‘蘭草 잎에 어둠이 내리면’을 펼쳐본다. 선생님은 한복을 곱게 입고 뿔테안경을 쓴 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시는데 책상머리에는 큼직한 난 화분이 놓여 있다. 그 사진 우측 아래는 작은 글자로 ‘그윽한 서실에서의 저자’라고 새겨져 있다. 책장을 넘기니 ‘서시’로써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라는 시가 있다.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 그때 나는/ 노을이 흔들리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글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영역일지라도 인류를 번영시킨 것은 책이 아니겠냐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멈추지 않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쌓아온 많은 사람
여름날 ‘부채!’ 하면 담양 소쇄원 댓바람 소리가 생각난다. 대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대나무의 바람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부채로써 합죽선의 멋과 신바람은 뭐니 뭐니 해도 남원의 판소리 춘향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옥에 갇힌 춘향이를 만나러 가서 “암행어사 출도야!” 하고 외치면서 소리꾼이 쥐고 있던 합죽선을 쫙 펼칠 때의 후련함과 통쾌한 감격! 그리고 당시의 민주화 즉 신분 차별 없이 남녀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는 외침이었기 매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여름 마을 앞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노인들이 모여 앉아 부채 바람을 일으키면서 흰 수염을 날리던 할아버지들의 풍류적인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비들 영혼의 바람결을 존중하며 속되지 않고 운치 있는 품격의 멋을 살아내는 그 정신이 그립기에. 지구의 온난화에 북극곰은 어디로 가야 하나? 또는 여름이 5개월일 것이라는 등 더운 시절이라서 말도 많다. 나는 소화기가 부실해 찬 음식과 냉방은 궁합이 안 맞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이면 어머니의 말씀 따라 웃옷을 벗고 샘가에서 팔을 펼쳐 짚고 궁둥이를 높이 쳐들고 있으면
국어 시간이 다른 학과 시간보다 수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스며들었다. 그 무렵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만났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로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 지금 같이 공부도 기술도 돈벌이도 연애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웃 없이 살아가는 게 아니었다. 남쪽으로 창문 하나 내고 자연 속에서의 삶을 사랑했다. 한가한 마음으로 강냉이 심어 깨물어 먹으며, 아는 사람이 오면 함께 먹겠다는 정신이었다. 이러한 삶이 바로 부모의 삶이요 가족들의 생활이었다. 그 속에서 성장하고 학교 가서 공부했다. 마을에서는 어른 아이 알아보며 인사 잘하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온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상적으로나 자본논리로 꿰맞춰 설명할 수 있겠는가. - 그러니 웃는 수밖에. 중국의 대표적인 목가 시인과 전원시인을 꼽으라면 도연명을 빼놓을 수 없다. 귀거래사의 주인공인 그는 벼슬을 버리고 귀농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는 목적은 인식의 변화를 꾀하며, 철학적 사상의 확충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영혼을 풍요롭고 밝게 가꾸는 일이다. ‘나는 지금 무엇하며 사는가?’를 생각하면서 아침에도 실비 내리는 산길을 걸었다. 읽히는 수필, 내 아이들이 읽어줄 만한 글을 써야 할 텐데- 하는 작가로서의 의무적인 생각을 했다, 예술가에게도 공주병 같은 심리가 있는 것일까. 내가 쓴 글이 감동적이고 울림이 있어 독자의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공주병 스타일’이라는 유머다. 이순신 스타일 : 나의 미모를 적에게 알리지 마라./ 안중근 스타일 : 하루라도 예쁜 척하지 않으면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맥아더 스타일 : 공주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리질 뿐이다./ 나폴레옹 스타일 : 내 사전에 추녀는 없다. 몸 기능은 낡고 세월 수치는 쌓여 가는데, 어느 날의 오후 가족까지 잃었다. 황량한 우주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는 느꺼움이 가슴을 날카롭게 찔러댈 때가 있다. 새는 제 이름으로 운다고 한다. 이름대로 운다는 것은 운명대로 운다는 것이다. 조상이 내린 운명과 이름대로 살면서 울어댄다면 나는 여자 이름이어서 남자로서 그 울음도 비 매력적일 것이다. 남달리 타고난
나는 신년사에서 2024년 화두를 용섭대천(用涉大川*겸손하며 덕을 갖춘 자가 큰 강을 건넌다.) 으로 정하고, 시민의 곁에 다가가는 현장 행정을 중심으로 국내외 판로개척과 자금지원을 통해 관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4년 비전을‘기업애로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수요자 중심 맞춤형 시스템 운영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기업활동 여건 개선’으로, 추진 방향을‘현장 행정, 밀착 행정, 체감 행정, 홍보 행정’으로 계획하고, 속도감 있게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추진했다. 1,236개 사업체의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해결 방안이 담긴 서한문을 발송했고, 경제 불확실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지원 시책이 담긴 책자도 발송해 주었다. 중소기업의 경영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경기도와 공공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하여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체 대표와 임직원의 기업활동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설명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등 전문가 집단을 활용했다. 모두 인사에서 시장을 바라보는 300개 이상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좀
1980년대의 은어로 여성들은 ‘돈키호테’를 좋아한다고 했다. 돈 많고, 키 크고, 호감이 가고, 테크닉 좋은 남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사는 게 도무지 재미가 없고 흥미도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웃자고 한번 해 본 얘기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고 핵무기를 보유한 북쪽에서는 별별 괴상한 짓거리를 다 하고, 일본은 독도를 제 것이라고 그들의 교과서에 못 박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나라의 진정한 친구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라요 우울한 사회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혼자이고 경쟁자는 있어도 진정한 이웃은 없는 것 같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나이 든 분이 지상에 발표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는 헬스장을 다니면서 코치(PT)에게 ‘회원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고 한다. 노년의 인정욕구를 새로운 삶의 길에서 맛보며 삶의 활력을 찾았다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말은 학원가에서나 체육인들이 신장과 근육을 이야기할 때나 썼다. 국가적으로는 5·16 군사 정부 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 성장과 속도의 강조가 우리들 두
일요일 아침, 사색의 숲 속을 걷고 싶어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그 순간 같은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중형자동차 몇 대를 소유하고 개인 사업을 하는 김 사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 아침 3시 30분에 일어나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 기사의 집 앞에 자기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 자동차 열쇠와 행선지를 알리고 오다 보니 이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바쁘게 할 일이 있어 ‘당신의 봄은 지금입니다’하고 돌아서 내 길을 걸었다. 보고 싶은 얼굴은 교회에 가서 보고 그리운 얼굴은 자연의 표정 속에서 읽는다. 순간순간 변하는 자연의 표정을 보면서 어릴 적 농촌의 안방에서 어머니 젖을 물고 잠들었을 내 모습을 기억의 저장고에서 발굴해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런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읍내의 백합사진관으로 가서 중학생 교복을 입고 촬영한 사진을 추억 속에서 소환해보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 속 시간들과 가정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정리하듯 글을 쓴다.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의 운명적 스타일은 행보다는 불행을, 웃음보다는 슬픔을, 억지 부려가며 소유하기보다는 물러서서 바라보는 길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좀 더 물러서서
밤새 비를 맞고도 가지 끝 하나 끄덕이지 않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본다. 나무는 큰 줄기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검은 상처의 자국은 성한 나무의 몸통보다 몇 배나 더 많아 보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저렇듯 엄숙하며 고요히 자신의 운명을 지켜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이런 가치 발견을 위해 나는 새벽길을 걷는다. 문학은 인간의 운명을 탐구하는 것. 앞으로의 인생을 더욱 다각적으로 탐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산(茶山)은 사약이 언제 배달될지 모르는 유배지에서 차를 즐겼다. 그리하여 호를 다산(茶山)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왕지사 차분한 마음으로 다산(茶山)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꺼내 읽기로 한다.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 살던 다산 정약용이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과 형과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한글로 번역해 편찬한 책이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이른 아침 운전하면서 평소처럼 헬스장으로 향했다. 대학로 골목길에서 나와 좌회전 하는 순간이다. 대학생 같은 두 명의 젊은이가 ‘X 할 놈’ 하고 욕을 한다. 차에서 내려 ‘지금 뭐라고 욕했느냐?’고 하니까 대들면서 운전 똑바로 하라는 것이었다. 곧 한 주먹 선사하고 싶은 태도였다. ‘거리에 여기저기 CCTV가 있으니 잘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오물을 뒤엎어 쓴 머릿속이었다.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 빌려와 나이 든 사람에게 젊은이들이 어떻게 대하는 지를 선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감정관리 키를 작동시켜 머릿속을 정화하고 싶은 데도 감정세척기 필터 고장인가 스트레스는 가시지 않았다. 일단 안전운행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알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수습했다. 그날 저녁이다. 식탁에 쑥국이 올라왔다. 막내인 딸이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피로할 텐데 핏줄의 써댐인지 봄 쑥을 구해와 쑥국을 끓여 ‘드세요’하는 것이었다. 딸의 쑥국에는 아내의 음식 맛과 어머니의 손맛이 어울려 고향의 맛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 수저 두 수저, 세 수저를 거푸 떠먹었다. 입안에서는 뜨거운 맛이었다. 그러다 식도로 내려가면서 시원하고 달보드레한 국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