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학교를 떠났던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를 선언해 길었던 의정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의료시스템을 멍들인 골칫거리 갈등을 풀어낼 실마리가 떠올랐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원칙을 저버린 극단행동에 결국 정부가 특혜로 해결책을 모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명징하다. 무책임한 의정갈등이 빚어낸 국민적 손해는 실로 막대하다. 극심했던 의정갈등을 반면교사하여 의료개혁의 큰길을 닦아내길 기대한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전원 복귀를 선언한 데 대해 여론은 일단 긍정적이다. 의대협 측이 교육의 총량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압축이나 날림 없이 제대로 교육을 받겠다고 한 대목도 당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의료공백이 한계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 지긋지긋한 악순환을 끝내는 길은 시급히 열어야 할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병하는 환자들과 가족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갈망을 빙자하여 원칙을 지나치게 벗어난 해법 모색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환자와 가족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사태 악화에 일조한 의대생들에게는 최소한의 책임은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동료·후배의 수업 복귀를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거나, 복귀자에 대한 조롱과 비방을 서슴지 않았던 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탈들이다.
교육부와 대학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적잖이 당혹한 모습이다. 의과대학은 지금처럼 수업 거부가 계속된다면 내년부터 24·25·26학번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사상 초유의 ‘트리플링’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2학기 복귀를 통한 학업 관리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의대생들은 지난 5월 1만9457명 중 8305명이 유급, 46명이 제적 통보를 받았다. 아직은 이 중 3개 대학 853명만 유급이 확정됐다. 교육부와 대학 관계자들은 2학기 복학이 여의하다고 해도, 올해 학업을 마치기란 불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본과생은 연간 40주 이상의 전공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당장 다음 주에 복학하더라도 내년 2월까지 32주밖에 남지 않은 상태인 까닭이다.
특혜 없이는 본과 4학년생이 올해 의사국가시험을 응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졸업자나 졸업예정자만 응시할 수 있는 올해 국시 응시 기간은 오는 21~25일로 목전에 다다랐다. 본과 4학년 학생들의 졸업 가능 여부와 국가시험 추가 응시 기회 제공 등은 복지부와의 협의도 필요하다. 기존 커리큘럼이 진행 중인상황에서 뒤늦게 복학하는 의대생들을 위해 대학이 교수와 공간을 특별히 제공해야 하는데, 과정과 학사 운영 부담이 여간 벅찬 게 아니다.
의대생들의 갑작스러운 ‘전원 복귀’ 선언이 여전히 의료체계의 마비를 걸고 특혜를 노린 겁박 의도의 소산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학의 유급 결정이 이어지자 이를 무효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에 대해서는 분명한 규명이 필요하다.
물론 ‘의대생 전원 복귀’라는 변곡점을 잘 소화하여 피폐해진 의료체계를 하루빨리 정상화해낼 책무는 당연히 정부 당국과 정치권의 몫이다. 의정갈등이 빚어내고 있는 의료시스템 붕괴와 왜곡 현상으로 인해 국민 건강 균형은 피로도가 극에 달하면서 심각하게 어긋나 있는 게 사실이다.
효과적인 소통을 일궈내지 못한 채 정책을 줄곧 밀어붙인 전 정부의 무능이나 힘없는 환자를 볼모로 의사로서의 엄중한 사회적 책무를 내팽개친 무정한 의료인들이 빚어낸 ‘무책임한 갈등’을 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어쨌든 의료개혁의 해야 할 것 아닌가. 세상의 모든 갈등을 오직 ‘남탓’으로만 덮어씌워 놓고 해법을 떠밀어대는 어리석음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의료인들이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직접 만든 의료개혁안이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그 날이 오길 고대해 마지않는다. 의정갈등의 암담한 터널 속에서 불의의 질병을 앓다가 속절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국민의 삶을 긍휼과 반성의 눈으로 되돌아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