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떼 학이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맑은 분위기 속 심호흡이 반갑다. 이 순간만큼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없었으면 싶었다. 그때, 조선 숙종 대에 정삼품에 이른 김삼현(金三賢)이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며 지은 ‘공명(功名)을 즐겨 마라’는 시조가 떠올랐다.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榮辱)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貪)치 마라 위기(危機)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하니 두려울 일 없어라’ -청구영언-
복잡 다사한 세상에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매사 삼가 하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거니 싶었다.
2025년 4월 3일 중앙일간지 K신문 1면 머리글에는 “임박한 ‘정의’…” 시민들 “이 불안, 끝이 보인다.”라고 활자화되어 있었다. 우측 사진에는 삭발한 스님들이 대통령 파면을 추구하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 문형배 재판관의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세상으로 울려 퍼져나갔다. 그 순간을 기다렸던 많은 국민들의 가슴은 후련했고, 큰 숨을 몰아쉬게 했다. 자연의 봄 못지않게 선량한 사람들의 봄을 위한 발자국 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문형배 재판관 모습은 단정하고 차분했으며 조용한 무게감으로 재판소를 꽉 짓누르고 있었다. 계엄으로 인한 내란성 불면의 밤 123일이 끝나가는 순간이었다.
삼라만상은 서로 공감을 나누는 거대한 교향곡이라고 했다. 봄의 전령은 나팔 불며 오지 않는다. 산자락에 논밭두렁에 나뭇가지 끝 꽃망울의 피면을 째면서 또는 낮게 엎드려 배밀이하며 오는 것이다. 그날은 산불도 잦아들었다.
4월의 봄은 식목일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내 어린 시절 식목일에는 괭이와 삽과 묘목을 가지고 학교 뒷산으로 가서 나무 심기를 했다. 그것이 애국인지 학교사랑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무궁화나무는 학교 울타리가 되어 ‘나라의 꽃’이라고 배웠다. 새삼스러운 생각이겠지만 2025년 4월 4일을 기념하는 나무를 한 그루라도 심어 두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나 정치풍토나 법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하나의 희망 사항을 정치인들에게 말하라면, 정치 감각도 경쟁도 중요하겠지만 유머감각을 살려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웃겨가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런 폭넓은 인문학적 능력자가 그립다는 점이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와 1박 했다. 다음날은 헬기로 대전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구름과 바람으로 헬기로는 갈 수 없었다. 별수 없이 KTX로 대전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시장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헬기가 뜨지 못하게 어젯밤 구름과 바람을 몰고 온 시장이시군요!’라고 유머를 날리어 사람들을 웃겼다고 한다. 이어서 교황은 자신에게 유머감각을 주시라고 40년간 기도했다고도 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포용정책과 조수미 가수의 포옹정책’이다. DJ는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시상식이 있는 그날 저녁, 화려한 공연장에서 한국의 조수미 씨가 등장하여 우렁차게 노래를 부른 뒤, 무대 왼쪽에 있던 DJ에게 다가가더니 서슴없이 않고 뜨거운 포옹을 좌우로 퍼부었다고 한다. 그 뒤 돌아오던 차 안에서 한승헌 변호사는 DJ에게 조수미 씨가 해외에서 오래 살더니,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포옹정책’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