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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뉴스생활] 끝나지 않은 ‘가습기 살인’

 

영화 공기살인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을 소재로 했다. 의사이자 주인공인 태훈은 아들의 급성 간질성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아내의 급사를 겪으면서 이 상황의 원인을 찾아보려 나선다. 유사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 사례를 살펴보던 그는 아들과 아내가 누웠던 침대 곁 가습기에 시선을 멈춘다. 태훈의 눈빛이 흔들린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유통되기 시작해서 2011년 판매 금지가 되기 전까지 17년간 43개 제품, 총 998만 개가 판매됐다. 당시 언론은 가습기를 정기적으로 소독해주어야 한다며 광고와 기사로 가습기 살균제를 소개하고 홍보했다.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40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 중 56만 명은 몸에 크고 작은 건강상의 피해를 경험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7,685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751명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끝나지 않은 사회적 참사다. 정부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을 걸러낼 검증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기업은 제품의 독성을 알면서 숨겼다. 이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왜 이리 차가울까?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을까? 2011년 사건이 알려졌지만 진상규명과 피해구제는 지금까지 미뤄져 왔는데도 말이다. 언론 보도가 넘쳐났던 시기는 있었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시민들의 분노가 불붙기 시작하면서 언론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언론은 세계 최초의 환경 보건 사건, 역대 최악의 화학 참사라며 뉴스를 냈다. 가해 기업의 사과와 청문회 성사가 이뤄졌는데 언론이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언론의 자발적 관심은 이내 다시 줄었다.

 

어렵게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구제 조정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조정에 임하고 있는 9개 기업 중에 지원금 비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조정안 거부 입장을 내면서 상황이 깜깜해졌다. 몇몇 언론은 조정액이 과도해 참여하지 않는다는 두 기업의 입장을 비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언론이 지금의 사태를 무보도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이 있다. 사망자와 유족들의 억울한 호소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이라는 오명을 씻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기회다. 언론이 가해 기업과 연관한 광고 수익을 염려해서 의제설정(agenda setting)을 소극적으로 한다는 비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채 미뤄왔던 문제다. 언론이 의제 지키기(agenda keeping)를 발휘해 변화를 만들어내주길 바라는 것이 무리는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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