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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53. 분당 정자동 태인정 -크게 찾던 태학, 널리 펴던 인덕

 

옛날에는 광주군 돌마면(突馬面) 정자리(亭子里)였는데 1973년 성남시 승격으로 성남시 정자동이 되고, 1991년 분당구가 생기면서 분당구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자동’이란 이름은 전국적으로 많은 지명 가운데 하나인데, 마을 주민들의 쉼터가 되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정자동에는 조선 성종임금의 12남 무산군(茂山君)의 다섯째 아들인 태안군(泰安君) 이팽수(李彭壽, 1490~1525)의 묘역과 그 자손들이 터를 잡았다. 태안군의 증손자인 이경인(1575~1642)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다.

 

 
이경인(李敬仁)은 자를 극보(克甫), 호를 정촌(亭村)이라 하였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이 되고, 함흥판관, 안산현감, 이천도호부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상을 많이 받았다. 병자호란 후 벼슬을 그만두고 탄천변에 내려와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소일하였다. 마치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과 들에 노니는 학처럼 아무런 얽매임 없이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


이경인이 정자를 짓고 ‘크게 찾던 태학 널리 펴던 인덕’이라는 뜻으로 태인정(泰仁亭)이라 이름지었고, 100여 명의 인재를 양성하였다.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정자리’가 되었고, 그의 호 ‘정촌’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가 조선후기에 전국을 휩쓴 전염병으로 인적이 드물어지면서 이 정자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경인은 노래 실력이 빼어났는데, 신흠(申欽)의 아들이며 선조임금의 사위인 신익성(申翊聖)이 강원도 고성 삼일포(三日浦)에서 배를 타고서 붉은 글씨가 새겨진 석벽을 손으로 만져보고 사선정(四仙亭)에서 술을 마셨는데, 거나하게 취하자 태수 이경인이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니 자신도 모르게 흥이 일어나서 시 한 수를 부채 머리에 써서 주었다.

 

 

그 시의 제목에 ‘극보(克甫)는 노래를 잘한다’고 썼다.
 
그대가 백설곡을 부르니 / 以君白雪調
나는 양춘곡으로 화답하네 / 和我陽春曲
창해는 넓어 흐르지 않는 듯 / 滄海漭不流
금강산은 우뚝 옥과 같구나 / 金剛屹如玉
 
백설곡과 양춘곡은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고아한 곡인데, 너무도 고상하여 부르기 매우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시를 높여 칭한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처음에 ‘양아(陽阿)’와 ‘해로(薤露)’라는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었는데 ‘양춘(陽春)’과 ‘백설(白雪)’을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이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이민구(李敏求)가 남긴 기록에는 그 날이 9월 보름날이었는데, 바다 위에 달이 올라 마치 낮처럼 밝고 하늘에는 티끌 하나 없었다. 이경인이 술을 가지고 따라와 이별하니 슬픈 노래가 격렬하게 일어나 소리가 숲에 진동하였다고 했다. 이경인이 세상을 뜬 후 어느 9월 보름날 이민구는 마포 서호(西湖)에서 술을 마시며 고성에서 이경인과 놀던 일을 추억하면서 대단히 서글프다고 하였다.
 
정자는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짓는데, 농사를 지으며 쉬기 위한 것은 원두막이라 하고, 선비들이 자연에 귀의하여 맑고 깨끗한 산천에 심신을 씻어내는 한편,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떠나 있고자 하는 마음에서 짓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절벽 위, 강가, 산봉우리 등 어디에 자리를 잡든지 인공구조물인 정자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멋과 풍류가 살아 숨 쉬는 것이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