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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콜라파고스의 선거

 

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통과의례가 있다. ‘수사’다. 전국에서 수많은 고소·고발이 이뤄지고 이에 따라 수사기관의 수사가 이어진다. 낙선자에게는 선거에 떨어진 마당에 수사까지 받아야 하니 설상가상일 것이다. 하지만 수사는 낙선자보다는 당선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치열한 선거의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수사의 결과에 따라 정확히는 재판의 결과에 따라 그 승리는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는 당선자를 한순간에 낙선자, 아니 낙선한 전과자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수사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많은 후보는 자신의 선거운동 못지않게 상대 후보의 위법사항을 수집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는 한다. 상대가 지켜보고 있으니 후보들은 더더욱 위축되고는 한다. 감시와 위축 그리고 위험은 선거를 극도로 예민한 일련의 과정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한다. 그 결과 후보들은 모든 행위를 일일이 선관위에 물어보고 나서야 실행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한다. 사사건건 고소·고발이 이뤄지고 사사건건 선관위에 질의하다 보니 선관위 역시 사사건건 규칙과 규율을 만들게 되고 만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선거규율은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외부와 격리되어 진화를 이어온 결과 자신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낸 갈라파고스와 같이 한국의 선거법은 마치 콜라파고스라 불릴 정도다.

 

예컨대 선거 피켓은 반드시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절대 바닥에 내려놓으면 안 된다. 그렇다 보니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피켓에 줄을 달아 목에 걸고 다닌다. 피켓이 바닥에 닿으면 안 된다는 기상천외한 규정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피켓의 크기, 무게 등에 대한 후보 간 이의제기가 이어지다 보니 선관위는 “손으로 들고 있을 정도의 크기라면 크게 와 무게는 상관없다”라는 기준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크기와 무게를 규제하면 현장에서 일일이 무게를 재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손으로 들 수 있는 크기와 무게”라는 규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선거사무실 현수막은 선거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외벽에 제한 없이 걸 수 있다. 이는 피켓과는 다른 규제다. 선거사무실 현수막을 어디에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다툼이 많다 보니, 차라리 선거사무실이 입점한 건물의 외벽에는 제한 없이 걸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얼마나 편히 접근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현수막을 걸 수 있는 외벽에 얼마나 크고 잘 보이느냐를 기준으로 선거사무실을 구하고는 한다. 아무리 접근성이 좋고 쾌적한 공간이라고 해도 외벽에 현수막을 걸기 적합하지 않다면 선거사무실로서 가치가 없다. 반대로 무너져 가는 건물이라도 대로변에서 잘 보이는 널찍한 외벽을 가지고 있다면 최고의 선거사무실이 된다.

 

이렇듯 사사건건 일일이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들로 가득 찬 선거규정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위법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후보들은 선거 후 다시 제2의 선거,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당선인이 될 수 있다. 콜라파고스의 선거에서 주인공은 유권자가 아닌 수사기관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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