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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잠들지 못하는 도시

 

 

선(線)은 점(點)이 모여 흘러가는 강이다. 점과 점을 딛고 걸어가는 길이다. 앞선 점의 어깨와 다음 점의 이마를 밟을 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다. 그런 이유로, 흘러가는 것들은 죄다 서럽다. 끌려가는 것들은 고달프고 밀려나는 것들은 안쓰럽다. 도시의 뒷골목은 둥둥 떠내려가는 것들의 비명으로 한낮에도 먹먹하다. 먹먹하든 막막하든 도시는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호등에 있는 빨간불이 세상살이에는 없다. 멈추면 죽고 흘러야 산다. 깨지든 말든 멈추지 마라. 침 발라가며 돈을 세는 손가락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전염병이 별을 삼켰다. 입과 코에서 뱉은 작은 점들이 집과 마을과 도시로 흘러들었다. 강처럼 바람처럼 흘러드는 바이러스의 점들 앞에 사람이 쳐놓은 방어선은 속수무책이었다. 점이 서고 선이 자빠졌다. 총구를 겨누는 군대도 힘으로 무장한 권력도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봉쇄와 추적과 격리의 선을 전염병은 놀리듯 넘나들었다. 전염병 앞에서 만물의 영장은 한없이 무력했다. 급히 만들어진 백신과 치료제는 흥정할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돈 많은 나라 국민은 천천히 죽었고 가난한 나라 백성은 빨리 죽었다.

 

집에서 죽고 길에서 죽고 병원에서 죽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는 죽음이었다. 주검은 관에 갇혀 소각로 불길에 휩싸였다. 소각로 바깥에서, 망자를 잃은 가족들의 울음이 저승길을 따라 흘러갔다. 울음은 대책이 없어서 금세 울음을 달래던 자에게 전염되었다. 우는 자와 달래는 자가 주저앉아 보듬고 울었다. 울음이 잦아들 무렵이면, 새로운 주검의 가족들이 소각로 앞으로 다가와 처음부터 다시 울었다. 울음의 시작과 끝은 소각로에 불이 붙었다가 꺼지는 시간과 일치했다. 그런 점에서 죽음과 슬픔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딸이 사직서를 썼다. 대학병원 호흡기 내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딸이다. 딸의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 대체인력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아내와 나의 참담함은 보류된 사표에 있지 않았다. 사표를 결심하기까지 딸이 견뎌낸 참담함을 눈치 채지 못함에 있었다. 코로나와 함께 병동은 죽음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가득한 죽음 앞에서, 그 아이는 환자 목 안으로 호스를 밀어 넣어 가래를 빼고, 피고름을 짜고, 대소변을 받아냈을 것이다. 아빠, 나는 환자들 이름을 외우기가 두려워. 말하던 딸의 아픔을 어찌하여 부모란 자들이 새겨듣지 못했을까.

 

스물일곱 살, 사년 차 대학병원 간호사가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 밤샘 근무를 마친 다음날, 시들어버린 몸뚱이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퇴근한 아내는 수면제를 먹고 잠든 딸을 보며 속으로 운다. 혹시라도 잠든 딸이 깰까 봐 울음을 삼킨다. 버티고 삼키는 딸과 아내를 두고, 시골에 퍼질러 앉아 글을 쓰는 나는 사람 자격이 있는 걸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사내가 아비이고 남편일 수 있을까. 개구리울음으로 가득한 밤. 오늘도 딸은 저녁 근무를 한다. 진정제로 우울을 견디며, 차트를 뒤적이고 맥박을 재고 주사바늘을 찌른다.

 

잠들지 못하는 도시는 아픔이 고인 수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