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9 (금)

  • 구름많음동두천 24.0℃
  • 흐림강릉 24.9℃
  • 흐림서울 24.8℃
  • 대전 25.5℃
  • 흐림대구 29.6℃
  • 흐림울산 26.5℃
  • 박무광주 24.5℃
  • 흐림부산 25.9℃
  • 흐림고창 25.0℃
  • 흐림제주 28.4℃
  • 구름많음강화 23.8℃
  • 흐림보은 25.2℃
  • 흐림금산 26.0℃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7.1℃
  • 흐림거제 25.7℃
기상청 제공

[아침보약] 보통의 존재, 보통의 희망

 

 

 

먼 길을 며칠에 걸쳐 걷는 등산가들이 해가 지고 나면 불 옆에 둘러 앉아 하는 게임이 있다. ‘내 몸에 난 상처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는 것. 오르막을 오르고, 거센 물살을 건너고, 본인 몫의 짐을 지고 여기까지 걸어오며 몸에 남은 흔적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책 (보통의 존재)에서 이석원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풍경들을 세밀히 묘사한다. 환상이 끝난 다음의 결혼생활, 끔찍했던 이혼을 이야기한다. 산책을 하다가 정신질환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마주쳤던 환자들의 기이한 행렬을 떠올린다. 경계성 인격장애와 우울증 등 여러 가지 병을 앓았다. 그때, 먹었던 약들로 자신도 복도를 걷는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고 주먹을 쥘 수 없을 만큼 기운을 앗아갔던 시간들을 회상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간들과 힘들었던 가족사의 끔찍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창작의 원천이 되었고 잊기 위해 8월의 폭염속에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달리며 만든 다섯 번째 작품이 가장 큰 성과를 가져다 준 아이러니를 말한다. 자신이 부정했던 자신의 특성은 유산으로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힘들게 깨닫는다.

 

책 (소망없는 불행)에서 페터 한트케는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1900년대 초반 그 시대의 여인들이 그랬듯이 그녀는 예정되어 있는 운명의 수순인 양 아이를 갖고 결혼하고 낳고 길렀다. 전쟁중 유부남과의 연애, 임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타협해서 한 결혼, 찢어지게 가난했고 남편한테 종종 맞았다. 삶에 치여 자신을 잃어갔지만 전쟁이 끝나고 가난이 조금 수월해진다, 어머니는 책을 읽는다.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작가는 “그녀가 읽은 많은 문학은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 한다. 극심한 두통과 신경쇠약이 그녀를 덮친다. 그의 어머니는 결국 치유할 수 없는 슬픔.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삶 대신에 자살을 선택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고통을 세상에 내보인다. 어머니에게 누군가가 다른 가능성을 알려주었더라면 다른 삶을 살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들은 회상한다. 이석원은 하고 싶은 일인 글쓰기를 찾는다. 지독한 절망속에서 희망이 존재하는것이라며 유독 연약한 속살을 보호하기 위한 거북이 등딱지 같은 삶의 매뉴얼을 만들어 나간다. 그가 고통을 드러낸 책은 출간 10년이 좀 지난 2021년 2판 67쇄를 찍는다. (소망없는 불행)의 아들, 페터 한트케는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썼고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진료실에서 또, 삶에서 ‘책한권’을 써도 모자랄 인생의 이야기들을 많이 만난다. 희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고통스러운 삶의 토양에서 싹트는 그것은 슬픔과 후회, 아픔과 절망에 범벅이 되어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보통의 희망은 그래서 희미하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