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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일어서는 사람들

-‘신명’ 40주년에 즈음하여

 

 

 

새가 운다. 새는 스스로 부리를 열어서 운다. 사람이 운다. 사람은 스스로 가슴을 두드리며 운다. 귀뚜라미가 운다. 귀뚜라미는 스스로 날개를 비벼서 운다. 새도 사람도 귀뚜라미도 우는 것에 막힘이 없다. 막힘은 자유의지와 별개의 영역이어서, 스스로 울 수 있는 것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울음이 막힘없는 건 아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시커멓게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울지 못하는 것들. 치미는 설움이 가슴을 찔러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는 것들. 제 혼자의 힘으로는 끝내 소리쳐 울 수 없는 것들. 울지 못하고 마른 땅에 쿵쿵 머리만 찍어대는 것들. 나는 그것을 ‘오월 광주’라 부른다.

 

오월 광주의 울음은 아픔 너머에 있다. 두들겨 맞고 질질 끌려갔던 망월묘지 지하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월 광주의 울음은 타악기를 닮았다. 때리고 두들겨 맞고서야 비로소 울음을 토하는 북과 장구와 꽹과리를 닮았다. 북과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팔십년 오월 광주를 누볐던 광대들을 닮았다. 때리고 두들길수록 거세게 울어대던 도청 앞 궐기대회를 닮았다. 투사회보를 뿌리던 학생들과 들불야학에 다니던 여공들을 닮았다.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 솥단지를 걸던 광주시민을 닮았다. 수배와 연행과 고문에도 꺾이지 않는 민주주의의 외침을 닮았다. 나는 그 닮음의 정체를 ‘신명’이라 부른다.

 

 

신명은 ‘감흥’인 동시에 ‘새벽녘’이다. 어둠을 밀어내는 새벽 여명이고, 산자가 따라야 할 당연한 사명이다. 사명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사명에는 앞과 뒤가 따로 없고 위와 아래의 경계가 없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울 수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사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물며, 오월 광주의 울음을 쏙 빼닮은 광대들은 오죽할까. 광대들의 사명은 때리고 두들겨 맞고서야 비로소 울음을 토하는 북과 장구와 꽹과리 속에 있다. 두들겨 맞을수록 더 높이 고개를 치켜드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있다. 핍박과 설움에도 그늘진 세상 한 복판에 기어이 꽃을 피우고 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일어서는 사람들’이라 부른다.

 

여기, 들풀보다 먼저 일어서는 광대들이 있다. 사십 년째 길과 마당과 무대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광대들이 있다. 빛고을 광주의 ‘놀이패 신명’이 바로 그들이다. 덩달아 신명으로 대표되는 전라도 마당극 또한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신명에게 있어 지난 사십 년은, 독재와 불의에 저항하는 세월이었다. 독재와 불의에 저항할 때, 놀이패 신명의 무기는 춤과 노래와 풍물과 굿이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신명의 무기를 필요로 한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오만하고, 집권여당은 불손하다. 이러한 때에 신명이 창단 40주년 기념공연을 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나는 그들의 공연을 ‘오만불손 척결 공연’이라 부르고 싶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오만불손으로 뉴스를 보지 않는 국민이 많다고 한다. 제대로 된 볼거리와 안구정화를 갈망하는 국민을 위해 놀이패 신명의 창단 40주년 기념공연을 소개한다. 이들이 준비한 공연은, 놀이패 신명 창단 40주년 기념공연 - 불혹 : 흔들리지 않는다! (7월 30일 오후 5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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