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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완벽할 자신이 없다

 

 

기역자 모양이다. 기역 니은 하고 부르는 그 기역(ㄱ) 말이다. 기역자를 따라 방들이 늘어서있는데, 방문 앞으로 길게 누운 마루가 방과 방을 이어주는 길 같다. 방이 아니라 섬이었다면 섬과 섬을 이어주는 물길 같았을까. 그러든 말든 마루는 개의치 않는다. 지붕에 앉힌 기와가 그러하듯 마루 또한 기역자 모양 따라 반듯하다. 도시의 기와집은 어떠할까. 산 아래 터를 잡은 시골집의 하루는 기와 끝에서 떠올랐다가 마루 끝에서 저문다. 처마 밑에서 일어났다가 툇돌 아래 눕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다남쪽의 기와집은, 처마 끄트머리의 기울기만큼 허락하고, 마루 끄트머리의 넓이만큼 보듬는다. 거절하고 밀어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햇살은 툇돌 보다 높은 곳을 탐내지 않고, 그늘은 마루보다 낮은 곳을 욕심내지 않는다. 빗방울도 낙엽도 그윽한 달빛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떨어지는 것들은 어김없이 처마와 마루 사이에 몸을 던지며 삶을 마감한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아무리 발돋움을 하고 서도 처마 밑이다. 바닥을 기어도 툇돌 아래 누울 순 없다. 억지로 해보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삶이다. ‘만류의 영장’이라는 계급장은 얼마나 부끄러운가. 밤에 싸인 지구별에서 인간과 풀벌레는 한끝 차이다.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어둠을 밝히는 형광등 불빛도 창호지 한 장을 통과하지 못한다. 지붕과 땅 사이를 간신히 딛고 살다가, 지붕과 마당 너머로 흩어지는 게 인생살이다.

 

방을 옮겼다. 기역자의 가로획과 세로획이 꺾이는 위치에서, 가로획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방을 옮겼다. 순서로 따지자면, 다섯 번째에서 첫 번째로 방이 바뀌었다. 바뀐 방에는 창문이 있다. 이웃방과 어깨동무를 할 수 없는 게 처음과 끝이라서, 하늘을 향해 팔 벌릴 수 있는 창을 달아주었는지 모른다. 책상 앞에 앉으면 창밖으로 아래채 기와지붕의 옆모습이 보인다. 기와지붕의 옆모습은 시옷(ㅅ)을 닮았다. 찬찬이 보고 있자면, 수건을 둘러쓰고 밭일하는 시어미 같기도 하고,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의 밀짚모자 같기도 하다. 무엇을 닮은들 어떠랴. 내 방 창밖에 숲과 숨과 산을 닮은 시옷이 하늘을 받치고 서있는 것을.

 

그래서 숨쉬기가 편한 것이겠지. 쉬 잠들고 쉬 일어나겠지. 높이만 다를 뿐, 똑같은 위치에서 똥을 싸고 밥을 먹고 섹스를 하는 아파트가 아니니까. 머리 위에서 똥을 싸고, 머리 위에서 밥을 먹고, 머리 위에서 섹스를 하는 집이 아니니까. 그래도 가끔은 외롭다. 긴 밤, 방향을 잃고 문장을 거슬러 오르다 끝내 손을 놓고 말았을 때. 그런 밤이면, 책상머리에 붙여 둔 세 장의 엽서를 보며 어둠을 밀어낸다. 속초와 분당과 세종에서 날아 온 엽서는 잠들지 않는 말벗이다. 지워지지 않는 편지고 멈추지 않는 전화다. 세 장의 엽서는 삼십 권의 책보다 두껍고, 삼백 장의 사진보다 뚜렷하다. 엽서에는 밤길을 밝히는 달빛이 있다.

 

애써 글을 쓰고 책을 묶으려는 것도 그래선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하랴. 나는 저 세 장의 엽서만큼 완벽할 자신이 없다. 다시 밤이다. 배롱나무 꽃잎들이 달빛에 흔들린다. 나의 여름도 덩달아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