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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바다남쪽, 설아다원

 

성은 마 씨고 이름은 승미다. 더하면 마승미가 되는데, 나는 그녀의 이름을 쉬 부르지 못하고 입안에서 머금고 있다가 잃어버리기 일쑤다. 하기는 우물쭈물하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어디 이름뿐일까. 무심한 척 웃어넘기지만, 내 속은 갈치 꼬랑지마냥 좁아터져서 그녀의 눈길 하나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담아냄이란 담을 것 보다 크고 넓어야 가능한 일인데, 담을 수 없음을 빤히 알면서도 내밀 수밖에 없는 그릇은 얼마나 옹색한가. 그러함에도, 어쩌지 못하고 그녀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까닭은 그곳에 뒷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녀의 집 뒷마당에만 서면 오금이 저려 쩔쩔매고 만다.

 

그녀의 집 뒷마당은, 그러니까 마승미가 사는 집의 뒷마당은 마당 자체로 산이다. 그 산을 사람들은 두륜산(頭輪山)이라 부른다. 듣자마자 떠올리는 그 산이 틀림없다. 대흥사(大興寺)와 일지암(一枝庵), 초의(草衣)와 다산(茶山)을 품고 있는 바로 그 산이다. 산이 내어준 것은 동쪽 끄트머리의 숲과 계곡과 오솔길인데, 그녀는 산이 내어준 경이로움을 집 뒷마당의 차밭에 오롯이 담아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집 뒷마당은 마당 자체가 산이다. 뒷마당에 일군 만 오천 평의 녹차밭 역시 밭이라기보다 산에 가깝다. 굳이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하자면, 산은 서쪽 바다를 향해 누운 소와 같은데, 그 소의 꼬리가 그녀 가족이 일군 집의 뒷마당인 셈이다.

 

그녀의 집에 들어설 때면, 내 숨결은 밀물을 타는 바닷고기의 지느러미 같다. 강진과 장흥과 완도 앞바다에서 펄럭이다 해남 땅을 향해 나부끼는 하늬바람 같다. 바다남쪽에서 떠올라 산으로 밀려드는 뭉게구름 같다. 첫 휴가를 나온 이등병의 군화 끈 같다. 애인의 손 편지를 받아든 열 개의 손가락 같다. 같은 마음으로, 바다를 향해 누운 두륜산이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가지런하게 늘어선 두륜산 줄기와 계곡들이 그녀의 집 뒷마당에 멈추며 내게 악수를 청한다. 산이 내미는 손을 마주잡고 서면, 비로소 내가 왜 이곳을 그리워하였던지 깨닫게 된다. 산이 전하는 푸르른 온기. 그것은 온전히 마승미 그녀의 것이다.

 

마승미는 소리꾼이다. 두륜산 계곡을 타고 넘실대는 바람처럼 그녀는 판소리를 한다. 해남 땅을 끼고 도는 바닷길처럼 그녀는 판소리를 한다. 마승미의 판소리에는 산이 있고 바다가 있다. 나무를 닮아 아늑하고 차(茶)를 닮아 포근하다. 그녀의 판소리에는, 어미 같은 아득함과 누이 같은 애틋함이 있다. 그녀의 집 뒷마당에 설 때마다 오금이 저려 쩔쩔맬 수밖에 없는 까닭도 그래서다. 녹차밭을 배경으로 차와 소리를 함께 접하다 보면 누구든 감동하여 오금저리지 않을 수 없다. ‘설아다원’은 소리꾼 마승미의 집이다. 설아다원은 차(茶)를 마시는 카페이고, 언제든 하룻밤 묵었다 갈 수 있는 한옥스테이다.

 

땅끝이 해남(海南)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소리꾼 마승미에게서 바다남쪽(海南)을 듣고, 설아다원에서 바다남쪽(海南)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