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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67. 안성 칠현산 칠장사의 유래와 역사

 

 

 

고려 시대 실록을 비롯한 중요한 문서와 책들을 처음에는 해인사(海印寺)에 간직해 두었었는데, 왜구들이 점점 가까이 쳐들어옴으로 경북 선산 득익사(得益寺)로 옮겼다가, 뒤에 왜구가 점점 깊이 들어오자 다시 충주의 정토산 개천사(開天寺)에 옮겼다. 왜구의 침입이 내지(內地)에까지 이르자 다시 죽주(竹州)의 칠현산(七賢山) 칠장사(七長寺)로 옮겼다. 그 후 조선이 건국하고 세종(世宗) 때 고려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한양으로 옮겼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탔다.
 

 


칠장사에는 수많은 보물이 있는데 칠장사의 보물을 훔치려던 도적 7명이 혜소국사 정현(慧炤國師 鼎賢, 972~1054) 스님의 제자가 되어 어진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7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궁예가 10살 때 까지 활쏘기를 했다는 활터, 임꺽정이 갖바치 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 이야기, 임진왜란 때 가또오 기요마사가 혜소국사의 비석을 칼로 베었다가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이야기 등 설화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그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32세에 과거급제를 하는데,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중 칠장사 나한전(羅漢殿)에서 기도를 하고 잠이 들었을 때 부처님이 과거시험의 제목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현재 칠장사에는 암행어사 박문수 합격다리가 만들어져 있고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지를 써서 빼곡하게 매달아 놓았다.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가 집권한 후 칠장사는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가 친정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의 원찰로 삼고 자주 왕래하였다. 역모 혐의로 김제남은 사약을 받고 죽었고, 아들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귀양가서 가시울타리에 갇혔다가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 증살(蒸殺) 당했다.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아궁이에 한도 없이 불을 때서 9살의 영창대군은 뜨거운 바닥 위에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문살에 매달려 울부짖다가 기운이 다해 죽었다. 친정어머니 노씨는 제주도에서 귀양생활을 하였다. 노씨가 제주도에서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가지고 왔고, 대비의 어머니가 파는 술이라 해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 하였다.
 


보물 제1627호로 지정된 인목대비의 글씨는 자신의 처지를 읊은 것으로 보인다.
 
老牛用力已多年(노우용력이다년) /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 해
領破皮穿只愛眠(영파피천지애면) / 목덜미와 가죽은 해어지고 쭈글어져 졸립기만 하구나

犂耙已休春雨足(이파이휴춘우족) /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충분한데
主人何苦又加鞭(주인하고우가편) / 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도 또 채찍을 가하네
 

 

칠장사는 항일독립투쟁의 기지였다. 성남 출신의 남상목(南相穆, 1876~1908) 의병대장이 의병을 모아 항일전을 치렀는데, 칠장사에서 주둔하면서 안성 시내의 일본군 헌병부대를 공격하여 크게 승전하였다. 남상목 부대는 구식총 40정과 양총 10정으로 무장하였고, 칠장사에서는 전봉규 의병부대와 공동작전을 전개하였다.

 


안성전투 승리 후 무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중국으로 망명할 계획으로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드리러 판교에 오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