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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샤를르 보들레르와 생루이섬

 

내 사랑, 내 누이/꿈꾸어보렴 거기서/단 둘이 사는 달콤한 행복을!

한가로이 사랑하며/사랑하며 죽을 것을/너를 닮은 그 나라에서!(...)/

그곳은 모두가 질서와 아름다움/호사, 고요 그리고 쾌락(...).

 

잠자던 로망을 불타오르게 하는 시다. 너를 닮은 그곳에서 단 둘이 달콤한 행복을! 깊어가는 가을 몽상 속에 풍덩 빠지게 한다.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여행에의 초대.’ 시인은 애인과 함께 이상의 나라 네덜란드로 떠나 살고파 했다. 감각을 승화시키고 절대적 진실을 찾아 헤맸던 보들레르. 그는 파리 오뜨푀이(Hautefeuille)거리 13번지에서 태어났다. 스물여섯의 처녀 카롤린 뒤파이는 육십이 넘은 조제프-프랑수아와 결혼해 보들레르를 낳았다. 아버지는 그가 겨우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어린 보들레르는 어머니와 함께 행복했다. 어머니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함께 나눴고 이는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됐다. 자전적 시, ‘하얀집’에서 그는 여름날 어머니와 함께 보낸 뇌이쉬르센을 회상했다. 그런 어머니는 재혼했고 그때부터 보들레르의 인생은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대학 대신 시인의 길을 걸으면서 의붓아버지와 싸웠고, 결국 보들레르는 친아버지가 남긴 거금의 유산을 챙겨 그와 결별했다.

 

 

유년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보들레르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다. 파리는 그의 삶의 터전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생루이섬을 좋아했다. 이 섬에 있는 퐁 마리(마리다리)는 센 강의 좌안과 우안으로 인도한다. 보들레르는 이곳 산책을 즐기며 골목 카페에 앉아 시를 썼다. 이 생활은 20년간 지속됐다.

 

스물세 살 작가초년병 시절에는 아예 이곳에 정주하며 그 유명한 ‘악의 꽃’의 초기작품들을 썼다. 그는 벽이 매우 높고 센 강의 경치가 훤히 보이는 넓은 창문 집을 좋아했다. 애인 잔 뒤발(Jeanne Duval)과 여기에 살면서 라 뚜르 다르장에서 점심을 먹고 집 근처에 있는 골동품상에서 물건을 사고, 저녁나절에는 피모당 호텔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보들레르가 좋아한 생루이섬. 이곳은 원래 방목장이었던 암소섬과 노트르담섬 두 개로 이루어졌다. 이 두 섬은 17세기 초 다리를 놓아 연결됐다. 이곳의 건축물과 분위기는 세월이 흘러도 거의 변함이 없다. 왜 보들레르가 이 섬에 굴복당했는지 짐작이 간다. 대시인이 떠난 지 어언 150년. 이 섬은 오늘도 찬란한 빛을 발사하고 있다.

 

파리를 여행한다면 라틴가(街)를 들러 고풍스런 대학가들을 둘러보고, 노트르담 대성당 꼭대기에 올라 파리전경을 바라본 후, 퐁 마리를 건너 생 루이 섬으로 들어가 보라. 파리지만 파리가 아닌, 왠지 에그조틱한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시 ‘악의 꽃’을 탄생시킨 생루이섬. 파리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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