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화한 살롱' 이번 편에서는 프랑스 문학 살롱의 내부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고자 한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만개한 파리 살롱은 시기별로 그 풍경과 역할이 조금씩 달랐다. 먼저, 1730년 살롱은 여전히 가족 분위기의 모임이 주를 이루었다. 무도회 다음 날의 고요하고 행복한 평온함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친밀한 모임이었다. 천정이 높고 동양풍의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의 넓은 방에서 무릎을 꿇고 작고 긴 털을 가진 강아지 비숑을 안고 몸을 녹이거나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음악책을 넘기는 여성들을 볼 수 있었다. 17~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스페인의 카드 게임(hombre)을 하며 나른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여성부터 의자에 돌아 앉아 실타래로 고양이를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여성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유함, 기쁨이 이곳을 지배하였다. 가면무도회의 두건 달린 옷을 입은 남자 옆에 가면이 놓여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1760년부터 살롱의 분위기는 변화하면서 빛과 소음으로 가득하였다. 금색이나 은색으로 수놓아 장식한 실크 직물이 문 위에 조화롭게 주름을 잡았고 연인들은 장난치고 즐겁게 놀았다. 촛불로 빛나는 보헤미안 크리스탈 샹들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셨다. 그는 인간이 공수래공수거임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신던 낡은 구두에 철제 십자가, 소박한 흰옷을 입고 장식이 없는 관에 누워 계셨다. 가슴이 찡한 이 영적 지도자의 장례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정치적 암투가 또 벌어졌다. 한덕수와 김문수 단일화 방식을 놓고 국힘의 한 의원이 새 교황 선출방식인 ‘콘클라베’를 거론했다. 이에 한 정치 평론가는 콘클라베가 무엇인줄 아느냐? ‘걸어 잠그다’라는 뜻이라며 말미를 흐렸다. 이 불편한 장면들을 목격한 필자는 콘클라베의 진정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클라베는 어원적으로 라틴어 ‘cum clave’에서 유래한 ‘밀폐된 방’을 의미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은 투표 기간 격리된 방에서 지내야 한다. 전통적으로 추기경들은 투표 과정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다. 이러한 고립은 교황청회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통해 교황청회의 신성하고 심의적인 성격이 강조된다.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열리는 추기경 회의로 정의된다. 이는 고립의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영적, 의례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뒤늦게 유학을 단행했다. 50세 이후를 준비하겠다는 포부에서였다. 막연한 목표였다. 하지만 꿈을 꾸면 닮는 다고 하듯 나는 정년이 없는 작가생활을 하고 있다. 기도가 이루어진 것 같아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에 기지개를 펴는 순간 뜻밖의 걱정이 파고든다. 머지않아 글 쓰는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뇌나 사지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그러는 것은 아니다. AI라는 라이벌이 등장해 내 일을 빼앗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크게 걱정하지 말자며 애써 낙관론을 펼친다. 글쓰기는 매우 개인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로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이 특별한 세계를 AI가 과연 온전히 장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을까? 영국의 유명한 작가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AI가 ‘자신의 스타일’을 모방해 생성한 짧은 텍스트를 읽은 후 인공지능은 여전히 영감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AI가 생성한 글은 쓰레기였다”고 기자회견에서 털어놓았다. “내가 직접 쓴 글을 몇 자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AI가 생성한 글은 내 글일 수 없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18세기 프랑스는 특권층의 경박함이 특징이었던 군주제에서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다. 이 새로운 물결은 더 큰 평등을 추구하는 철학자, 작가, 예술가들의 자극에 힘입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결국 이는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고 프랑스에 민주주의를 앞당겼다. 문학 살롱은 이러한 사상을 꽃피우는 중요한 장소였다. 파리의 품격 있는 여성들은 훌륭한 작가, 예술가, 학자들을 자신의 살롱에 초대해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비평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지적 활력소인 '계몽주의’를 불러왔다. 파리의 살롱은 빠르게 지방과 해외에서 모방되었고 전체 생활 예술, 심지어 연설 예술이 승리한 대화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그 동안 국가의 중심이자 의견의 원천이던 베르사유 궁정은 일몰을 맞았고 공격의 대상으로 기조가 변해갔다. 이 시기의 살롱은 랑부이예 부인의 '파란 방'처럼 문학적 게임이나 심리적 게임의 장소가 아니라 정보의 교환, 사상의 비교, 비평, 철학적 프로젝트 개발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또 이러한 교류의 장은 문학적 명성을 쌓거나 깨트리고 작가들에게 추종자와 인맥, 때로는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히 살고 싶어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는 불로초를 먹고 영생을 꿈꾸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애석하게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만약 현세를 살았다면 백세를 넘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백세시대는 결코 허상이 아니다. 20세기에 100세 이상 인구는 9만 2000명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62만 1000명으로 증가했고, 2050년에는 370만 명이 될 전망이다. 122세로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나 116세까지 살았던 일본 남성 기무라 지로에몬, 118세까지 살다간 프랑스 여성 뤼실 랑동, 그리고 117세까지 살다간 미국 여성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는 100세 보다 훨씬 더 살았다. 현재 세계에서 최고령은 116세인 브라질의 수녀 이나 카나바로 루카스이며, 그 뒤를 영국 남성 에델 캐터햄과 일본 여성 오카기 하야시가 115세로, 독일 여성 샤를로테 크레치만과 프랑스 여성 마리-로즈 테시에가 114세로 쫓고 있다. 이들처럼 건강히 110세를 넘긴 사람을 슈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이라고 부른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 기대 수명은 71세이다.
만학도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실력보다 커넥션이 중요한 사회의 공고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모대학의 모교수에게 강의를 주실 수 있는지 타진하는 손편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 답신이 와서 나는 그 교수를 만나러 학교 연구실로 찾아갔다. 모교수는 내가 전공한 여론과 여론조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면서 여러 질문을 하셨다.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론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그 개념에 입각해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한국이 여론조사로 공천을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여론조사를 공천에 사용한 민주당의 2002년 대선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도 설명 드렸다. 여론조사란 오차범위가 존재하고 그 오차범위 안에 있는 후보들은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인데 0.01%라도 앞선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룰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한국 사람들 너무 겁이 없다”라는 말까지 드렸다. 그러자 그 교수는 웃으면서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방법이 없어서라고? 난 이 말에 동의
파란 방을 가진 랑부이예 호텔 전편에서 이야기했듯이 프랑스 문학 살롱의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앙리 4세 통치가 끝날 무렵 궁정의 관습이 다소 천박해지자 파리의 귀족 여성들은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기로 결심하고 자택에 사교모임을 열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살롱은 랑부이예(Rambouillet) 부인이 운영한 파란 방이었다. 파란 방은 벽을 비롯한 방 안의 분위기가 파랑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당시는 벽이 대부분 빨간색이나 황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랑부이예 부인은 그런 색을 탈피하고 다른 색을 칠해 분위기를 독특하게 하였다. 랑부이예 부인의 원래 이름은 카트린 드 비본(Catherine de Vivonne)으로 158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스페인과 프랑스 주재 이탈리아 대사였고 어머니는 귀족의 후예였다. 개성이 강한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였다. 그녀의 집에는 아버지를 찾는 문인들이 자주 모였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머니는 이 모임에 딸이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렇게 그녀는 대화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예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고 역사를 좋아했던 그녀는
새로운 기술로 등장한 인공지능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기계의 행동은 실제 우리의 행동과 비교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의 일이다. 1950년 수학자 앨런 튜링은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기계에 지능을 부여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게 바로 ‘튜링 테스트’ 개념이다. 그는 기계가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완벽하게 파악했다. 즉, 어떤 사람이 인간과 대화 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계와 대화 하고 있는지 구별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이즈음 워렌 위버는 기계가 자동으로 텍스트를 번역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인공지능에 의한 번역의 역사를 예고했다. 그로부터 단 5년 만인 1956년, 인공지능은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앞 다퉈 인공지능 연구에 들어갔다. 기술 혁명은 점점 더 가속화됐고 많은 전문가는 인공지능이 2000년대에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혁명이 그리
자동차가 자율 주행하고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 이는 오랫동안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현실이 되어 우리 생활 속으로 훅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 오픈AI는 인간처럼 추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쳇GPT-5를 공개했다. 이는 기계가 더 이상 프로그래밍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AI는 우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간단히 ‘Yes’, ‘No’로 답할 수 없지만 필자는 과감히 ‘No’라고 말하고 싶다. 기술이 제 아무리 정교해진들 우리 인간 경험의 미묘한 뉘앙스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있다. 최근 데이트 앱의 전 세계 사용인구가 16%나 감소했다. 이 현상은 스페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왜 그러할까? 이 나라에 사는 싱글들은 ‘메르카도나(Mercadona) 플러팅’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카도나 플러팅’이란 오후 7~8시에 대형마켓 체인인 메르카도나로 쇼핑을 떠나 카트에 파인애플을 담음으로써 “나는 진지한 만남을 원해요”라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전통적 관행이다.
세계 제1의 박물관 파리 루브르. 매년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9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서울시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이 많은 사람 중 80%가 외국인 관광객이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조콩드(Joconde)’다. 조콩드는 ‘모나리자’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연간 700만 명이 이 그림을 보고 간다니 참으로 놀랍다. 세계인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 역사가 230년이 넘는다. 장구한 역사가 부럽지만 심각한 노후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 낙후된 기술 장비는 온도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귀중한 작품들을 위협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루브르 박물관을 개보수할 방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유리 피라미드의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박물관 동쪽에 새로운 대형 문을 만들고 연간 방문객 수를 1,200만 명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현재 피라미드 문은 연간 4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도록 디자인 돼 굉장히 비좁다. 또한 박물관의 대표 작품인 모나리자가 독립적으로 접근 가능한 ‘특별구역’을 설치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어 주변 지역의 관람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