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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평화·생태의 보고’ DMZ 따라 걸어본 민통선…“고요·평화 그 자체”

2022 디엠지 런(DMZ RUN) 평화 걷기 대회 르포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출발 20km 구간 6시간가량
자연 그대로 보존된 아름다운 DMZ…절경 펼쳐져
김동연 “DMZ 성장 잠재력 극대화하도록 노력할 것”

 

푸른 하늘에 붉은 단풍이 완연한 가을 날씨를 온몸으로 느껴보고자 경기도의 대표 평화 스포츠 체험 행사인 ‘2022 DMZ RUN-평화 걷기 대회’를 한 달여 전 신청했다. 

 

2019년부터 시작된 DMZ RUN은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마라톤·자전거타기·걷기’를 하며 생태·문화·역사적 가치 체감과 평화·통일 필요성 인식 확산 등을 위해 도가 마련한 행사다.

 

뛰기는 힘들고 잘 안타는 자전거를 새로 살 순 없으니 걷기 코스가 제일 좋겠다 싶었다. 광교산 등반도 문제없던 체력이라고 자부하면서 호기롭게 ‘20km’를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20km 코스는 임진각 평화의 종각에서 출발해 46T 통문, 통일대교 하단, 초평로 전망대, 임진나루, 율곡습지공원, 화석정, 장산리 마을 등을 거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행사’라는 문구가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행사 당일인 지난 29일 오전 8시 반쯤, 코스모스와 철책선이 공존하는 자유로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길을 지나자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도착했다. 걷기 좋은 화창한 날씨였다. 

 

1200명의 참가자들은 일찌감치 도착해 참가번호를 장착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번호표를 옷에 붙이고 평화누리 무대 앞에서 준비 운동으로 굳어진 몸을 풀었다. 이날 행사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참가자들과 함께 준비 운동을 한 후 걷기 행사에 동참했다.

 

 

김 지사는 인사말에서 “지난 70여 년간 자연 그대로 보존된 아름다운 DMZ를 잘 보전하고 발전시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대처하고 DMZ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하겠다”며 “DMZ를 품은 경기북부를 기회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오전 10시쯤 김 지사가 북을 세 번 치고 ‘가자 더 큰 평화로!’를 외치며 개막 선언을 하자 본격적인 걷기 행사가 시작됐다. 마칭밴드는 민통선으로 들어가는 46T 통문으로 갈 때까지 평화의 팡파르를 울리며 응원을 건넸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자 철조망 밖으로 벼가 익어 노래진 논밭이 드넓게 펼쳐졌다. 콤바인을 타고 벼를 추수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몰 후에는 이곳에 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통일대교에선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방북을 했다는 표지판도 보였다. 통일대교를 지나 돌멩이가 깔린 길을 지나는 동안에는 10~20m정도마다 적의 총포탄 피해를 막기 위해 땅을 파 만든 ‘참호’도 보였다. 또 군복 색깔이 덧칠된 초소도 군데군데 있었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사진촬영이 일체 금지됐는데 ‘MP’라고 적힌 완장을 찬 헌병 군인들은 참가자들을 삼엄하게 감시했다. 그러다 1시간쯤 경과됐을 무렵 53T 통문에서 처음으로 사진촬영이 허가됐다. 

 

 

사진촬영이 허가된 공간은 분단의 아픔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철조망에 걸렸다. 류신정 작가의 ‘Tomorrow Blue C’, 유영호 작가의 ‘안녕하십니까’, 김상균 작가의 ‘The Scenery 19482014’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특히 ‘안녕하십니까’ 라는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작품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안부도 묻지 못하는 엄중한 현실의 벽은 철책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경계선이 얼마나 두텁고 먼 거리인지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돼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늦지 않게 이 고통의 벽을 무너뜨려야 하고 또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서 부터 극복은 시작될 것이다. 작품은 이곳 분단의 현장에서 남과 북의 모든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다. 우리 모두 안녕하십니까”라고 전했다. 

 

 

지나다보니 녹슨 전시물과 구조물들도 눈에 띄었다. 10~20여 년이 지나면서 때가 많이 껴있기도 했고 낡은 철조망들도 보였다. 구조물 주변으로 잡초들도 무성하게 자라 방치돼 있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경하는 동안 1시간반가량이 지났다. 초평도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쯤 슬슬 다리에 자극이 오기 시작했다. 쌀쌀한 날씨에 입고 있던 경량패딩은 벗은지 오래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는 동안 국악듀오가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을 연주하며 응원을 더했다. 

 

김 지사는 초평도 전망대 철조망에 멈춰 ‘평화·생태의 보고 DMZ가 미래다’라는 문구를 적어 평화리본을 달고 남아공, 영국, 라트비아, 콜롬비아 대사를 비롯해 참가자들과 함께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기원했다.

 

 

전망대를 지나자 연두빛 풀과 나무, 노란 평야, 임진강이 한데 어우러진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발이 아픈 것도 잊을 만큼 수려한 경관에 감탄을 자아냈다. 


붉은빛, 노란빛의 단풍 나뭇잎들과 들꽃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그 사이로 고추잠자리도 날아다녔다. DMZ의 고요함과 평화로움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오후 1시쯤 드디어 10km 구간인 율곡습지공원에 도착했다. 스마트워치로 재보니 17000걸음 정도 걸었다는 기록이 떴다. 아직 화석정, 장산전망대, 장산1리 마을 등 10km 구간이 더 남아있었다. 체력 문제로 고민이 들었지만 이내 거두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민통선 마을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을 올라 한참을 지나야 했다. 이윽고 오후 3시쯤 장산1리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도 노란 평야가 펼쳐져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마을주민에게 동네에 대해 물으니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소개했다. 

 

위험이 느껴지진 않느냐는 질문엔 “북한이 도발할 때나 홍수가 심할 때는 지뢰·불발탄이 떠내려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긴 하지만 정부에서 그만큼의 대비도 하고 있다고 생각돼 아직까지 큰 두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간반가량이 지날 때쯤 스마트워치 배터리도 다 됐다는 알람이 떴다. 3만3000걸음 정도를 걸은 후였다. 마지막 30분가량 남은 구간은 행사 안내원과 동행했는데 큰 힘이 됐다. 오후 4시15분쯤 마지막 주자로 도착해 메달을 손에 쥐었지만 다리는 다 풀려있었다. 

 

민통선 일대를 걷는 동안 체력 저하로 인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완주의 쾌감은 짜릿했다. 내년에는 체력을 키워 재도전해볼 생각이다. DMZ 일대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자연이 곳곳에 보존된 생태환경 공간인 만큼 내년에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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