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은 화장실 등 위생시설 마련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유엔(UN)이 지난 2013년 선포한 ‘세계 화장실의 날’이다. 화장실은 위생의 핵심이다. 인류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존엄성을 지키는데 화장실은 매우 중요한 도구로 기능한다.
수원시의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 사업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도 독보적이고 선도적이다. 화장실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수원 화장실의 역사와 영향력을 살펴본다.
◇ 명소마다 아름다운 수원의 화장실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위치한 해우재박물관 1층 ‘해우재화장실’은 지난 11일 ‘제24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에서 은상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 화장실은 변기모양을 형상화해 만들어진 건물로, 일반적인 화장실과 달리 내부에 곡선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변기의 둥근 모양을 따라 내부에 대변기 칸을 배치했고, 천창을 만들어 자연채광과 환기가 용이하다.
흰색과 나무색을 적절히 활용해 편안한 느낌으로 내장을 마감하고, 직관적이고 익살스럽게 표현한 외벽 픽토그램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수원시는 행정안전부와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에서 화려한 수상내역을 자랑한다.
1999년 첫 공모 및 시상이 시작된 후 단 3회를 제외하고 21번의 공모에서 수상작을 배출했다. 대상 3회를 비롯해 금상, 은상, 동상, 특별상 등 총 28번의 수상 기록을 기록하고 있다.
아름다운 화장실의 첫 테이프를 끊은 제1회 대상은 ‘반딧불이화장실’이었다. 광교산 입구의 깨끗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앞쪽으로 넓은 저수지가 시야를 틔우고 뒤편에 든든한 산이 감싸는 형상으로, 내부에서도 외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중앙 홀에는 ‘작은 도서관’이 설치돼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1회 대상 외에도 2000년 전국 공중화장실 베스트5에 선정됐고, 지난 2017년에는 은상을 재수상하는 등 수원의 아름다운 화장실 중 대표격으로 여겨진다.
이후 수원에서 대상작품은 2015년 제17회 공모에서 탄생한 ‘광교중앙공원화장실’이다. 색을 활용한 픽토그램으로 안내 효과를 높이는 등 편의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태양광시스템과 물 재이용 시설, 절전 센서, 엘이디(LED) 사용 등 곳곳에 에너지 절약 시스템을 갖추며 환경을 고려한 화장실이었다.
2020년 제22회 공모에서는 수원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미술관을 꼭 닮은 형태로 만들어진 ‘미술관옆화장실’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언뜻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외관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한 공간 배치와 구성, 영유아 맞춤형 기구와 시설을 갖춰 호평을 얻었다.
이밖에 ▲칠보산 입구에서 7개 보물 중 맷돌을 형상화 해 만들어진 맷돌화장실(2007년 은상) ▲수원화성의 이미지를 차용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창룡문외성화장실(2006년 은상) ▲광교호수공원 잔디광장에 목재와 자연벽돌 등 자연친화적 재료로 편의와 안전까지 챙긴 재미난밭화장실(2019년 은상) 등의 수상 기록도 있다.
◇ 화장실 문화를 시작하고 꽃피운 수원
수원시는 명실공히 화장실 문화의 중심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저분한 곳으로만 여겨지던 화장실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드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문화는 수원을 넘어 국내 다른 도시에, 나아가 해외 개발도상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수원에서 화장실 문화의 씨앗을 뿌린 것은 초대 민선 시장을 지낸 고 심재덕(1939~2009) 전 수원시장이다. ‘미스터토일렛’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화장실 문화 사업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경기를 유치하기 위한 시군의 경쟁이 활발하던 1996년부터 화장실 관련 특별전담팀을 만들었다. 불결한 공중화장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외국 손님들을 맞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1999년 한국화장실협회를 창립해 화장실 문화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갔다. 덕분에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주요 관광지 곳곳의 화장실에 음악이 흐르고 꽃과 그림이 놓이고,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2007년 11월 화장실 전문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 World Toilet Association)를 창립한 뒤 초대 회장을 맡아 활약했다.
심 전 시장은 30여 년간 살던 집터에 변기모양을 본뜬 '해우재'를 지었고, 사후 유족들이 2009년 수원시에 기증했다. 이후 해우재에는 세계화장실협회 사무국이 위치하게 됐다.
수원시와 세계화장실협회는 화장실 관련 토론회와 학술회의 등을 함께 진행하며 화장실 관련 기술과 문화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노력으로 수원을 화장실 문화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 세계 곳곳에 ‘수원화장실’을 만들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꽝시폭포나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지 등 유명 관광지에는 ‘수원 퍼블리 토일렛(Suwon Public Toilet, 수원화장실)’이라는 현판이 달린 화장실이 있다.
이 수원화장실은 수원시가 지난 2014년부터 추진해 온 개발도상국 공중화장실 설립 지원사업으로 설립됐다.
라오스 방비엥을 시작으로 유명 관광지와 학교, 공원, 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에 공중화장실이 만들어졌다.
수원화장실은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베트남, 방글라데시, 필리핀, 터키, 미얀마, 몽골, 잠비아 등 10개국에 25개소에 달한다.
가장 최근인 올해는 잠비아에 수원화장실이 문을 열었다. 지난 8일(현지시각) 준공한 치볼야마켓(Chibolya Market) 수원화장실은 남·여 화장실, 장애인용 화장실 등을 갖춘 공중화장실이다.
잠비아에는 치볼야마켓을 포함 총 3곳의 수원화장실이 있다. 지난 2021년 루사카 차이나마 힐스 칼리지 병원과 총궤 카덴데 시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수원화장실이 세워졌다.
수원시는 개발도상국에 설치된 수원화장실이 선진적인 화장실 문화가 전파되고 화장실의 중요성을 확산하는 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화장실 문화와 정보, 관련 기술을 공유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을 지원하는 것은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숭고한 가치”라며 “수원시는 전 세계 모든 이가 안전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화장실 문화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유연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