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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첫눈을 기다리는 이유

 

 

가을은 진홍빛 와인 색깔로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가을도 깊어지면 첫눈을 기다리게 된다. 첫눈은 첫사랑의 가슴 같은 설렘과 그리움의 해갈 같은 기쁨을 안고 온다.

 

산중에 살다 간 법정은 1 미터 가까이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고 들짐승들도 얼씬하지 않을 때는 ‘글은 곧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글씨 또한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마음으로 다산(茶山) 선생의 복사된 글씨를 압핀으로 빈 벽에 붙여 놓고 보면 방안이 한결 고풍스런 품격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흰 눈이 펄펄 내리면 종남산 아래 눈 덮인 들길을 걸어 산속 어느 집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 삶의 주변과 국가의 역사적 참사를 보면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시인이란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앓아 주는 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 말해왔듯 ‘문학은 종교나 정치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근래의 역사적 큰 참사요 불행한 사건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이래도 되는가 싶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버스와 승용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여 그 안에 있던 무학여고 학생과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서해훼리호 사건,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로 이어졌다. 정말 안전한 대한민국이며 생명과 재산을 국가에 의지하고 살아갈 경제대국인가 싶다. 따라서 우리는 왜 잊을 만하면 참사를 당해 날마다 명복을 빌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0원으로 일주일 살기·냉파(냉장고 파먹기)요리법·무지출 데이트- 등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 줄이려고 아예 지갑을 닫아버린 청년 자린고비들 이야기가 인터넷상으로 떠돌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상반기 세대별 체감 경제고통지수를 산출한 결과 20대가 25.1로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다. 체감 물가지수나 체감 고통지수는 결국 경제문제이다. 백성 모두의 고통이요. 목을 조여 오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북쪽에서는 아이들 딱총놀이 하듯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나를 믿으라는 사람 없고 희생자의 가슴을 진정으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치솟는 물가에 20대 취업준비생 열 명 중 여섯 명이 먹는 밥값을 먼저 줄일 것이라고 한다.

 

늦은 계절까지 오래오래 머물다 소리 없이 지는 낙엽을 아침 산책길에서 보며 내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행복한 침묵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눈 들어 자연을 보면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된다. 산 아래 어느 집 뜰의 감나무 가지에 지금껏 매달려 있는 홍시가 거둬져야 그 나무 가지에도 휴식이 올 것이다. 대숲의 참새들 지줄 대는 소리도 잦아져야 대나무의 명상도 깊어져 내년 봄 대 바람 소리에 새로운 리듬이 실릴 것이다.

 

낙엽이 졌으면 첫눈을 기다릴 때다. 그동안의 희생자와 상처 깊은 부모의 가슴에 눈이라도 펑펑 내려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수능 끝난 학생들과 가슴 답답한 사람들도 눈 핑계 삼아 데이트라도 즐겼으면 싶다. 나는 이 땅에 눈이 내리면 가족을 잃고 그리워하며 숙명의 거미줄에 엉거주춤 걸려 있는 존재의 허무를 함께 위로할 수 있는 그 사람과 들길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