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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익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 '불승인주의'

미국 동아시아 외교정책의 상징, '불승인주의'에 드리운 빛과 어둠

 

'미국은 우리에게, 아니 미국에게 우리나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최형익 한신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의 오랜 고민이 '미국 동아시아 외교정책과 한반도 문제'라는 부제와 함께 '불승인주의(NON-RECOGNITION, 진인진 刊)'로 세상에 나왔다.

 

511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보여주는 최 교수의 깊은 고민에 걸맞게 출간과 함께 학계와 정계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변천 속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문제를 적확하게 꿰뚫은 명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한국기업 자부담원칙 발표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그런데 발표와 동시에 대환영의 뜻을 발표한 나라는 정작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것도 바이든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한국정부의 강제징용자 해법에 미국측의 무언의 압력이 작용했으리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처럼 한일과거사 문제에 대한 합의안 도출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1965년 대일청구권협상 타결에 이은 한일 국교정상화와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에 미국이 관여해 합의안을 조율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 점을 보다 올바르고 사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교수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게 우리는 무엇인가로 문제의식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보이지 않았거나 가려져있던  한미관계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읻다.

 

'불승인주의: 미국 동아시아 외교정책과 한반도문제'는 바로 미국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행사하는 힘과 영향력의 실체와 기원을 찾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특히, 1871년 조선과 미국이 전쟁을 통해 처음 만난 후, 한 세기 이상의 한미관계를 미국의 외교관념과 대외인식, 그리고 동아시아 외교정책의 틀 속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20세기 시작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한반도·동아시아 대외정책을 떠받쳐온 양대 지주는 ‘문호개방원칙(open-door principles)’과 ‘불승인주의(Non-recognition)’다.

 

문호개방원칙은 미국 외교정책의 100년지 대계로 국제주의 외교문법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윌슨 대통령이 표방한 국제주의의 기원 역시 문호개방원칙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가운데 미국 동아시아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스팀슨독트린으로 잘 알려진 ‘불승인주의’라고 최교수는 설명한다.

 

스팀슨독트린은 일본의 후견아래 건설된 만주국을 괴뢰정부로 간주,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외교원칙으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미국이 내세운 불승인의 핵심 기준은 만주국 수립이 문호개방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한 세기 이상 지속된 미국의 동아시아, 한반도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윌슨식 국제주의와 문호개방원칙, 그리고 불승인주의 등 세 가지 주요 외교원칙의 조합과 변주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최교수는 불승인주의의 적용은 대단히 이중적이었다고 강조한다. 스팀슨독트린을 공표한 1932년 당시, 정작 미국에서는 고립주의와 중립외교가 절정을 이뤘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유럽에는 중립노선을 적용,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하지만 아시아는 예외였다. 아시아에서는 윌슨주의가 살아남아 스팀슨독트린으로 부활했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무조건 항복론’으로 이어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에게 내건 ‘무조건 항복론’은 만주에서의 일본의 군사·외교적 결정뿐만 아니라 메이지 헌법 체제 하에서 행해진 일체의 정치행위를 부정하는 형태, 곧 ‘일본제국 자체의 불승인’으로 이어졌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앞장서서 승인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윌슨주의에 내재한 이중 기준을 적용한 것이고 그런 만큼 놀라운 사태의 반전이기도 했다.

 

한반도문제가 다시 미국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무조건 항복론’에 따른 일제에 대한 불승인주의의 자연스런 결과였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변화가 '카이로선언' 말미에 '한국인들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라는 문구가 담기게 된 대표적 이유라고 최교수는 분석한다. 미국의 대일본정책의 급격한 반전은 식민지 조선에게는 당연히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기회의 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외교정책은 한반도문제에 압도적인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1945년 해방 직후에는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키를 쥔 나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미국은 개항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한정해서 유의미한 정책을 수립한 적이 없다. 해방 직후 한반도문제의 해결책으로 미국이 제시한 '신탁통치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정책은 미국 외교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했을 뿐이다. 그럴 때조차 중국과 일본을 우선하는 동아시아정책의 일부로 취급하거나 종속변수였을 따름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한반도 문제와 결합(coupling)하거나 분리(decoupling)되는 식으로, 일련의 마주침과 헤어짐의 과정을 겪어왔다. 상식적으로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한반도정책의 일치, 곧 미국의 강한 개입이 한반도문제 해결에 우호적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데 역사적 반전의 묘미가 숨겨져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의 숨겨진 의도는 기존 한미관계 가설을 상당부분 뒤집는 '전복적 해석학'에 속한다.

 

이 책은 미국 외교정책의 변천 속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문제를 이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기존 대부분의 연구는 한반도문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을 논의했지만, 반대로 이 연구는 미국 외교정책의 주요 특징을 고찰하는 가운데 한반도문제를 살피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외교정책사는 기존 유럽나라들과는 결이 다른 정치문법을 채택해온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최교수는 밝히고 있다. 외교정책 상의 변형과 변주,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흐르는 미국 외교정책의 내적 핵심과 독특한 문법이 있다는 게 최교수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미국과 동아시아, 미국과 한반도 관계의 역동적 변화상을 보다 잘 이해하고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지은이는 일본 게이오대학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방문교수.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통일부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마르크스의 정치이론', '고전 다시 읽기', '실질적 민주주의', '대통령제,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읽기'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 등이 있다.

 

[ 경기신문 = 최정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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