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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소나기 너머의 햇살

 

눈을 감습니다. 보다가 맙니다. 말았어도 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본 것은 눈 바깥의 일이지만, 못 본 척 하는 것은 눈 안쪽의 일입니다. 눈 바깥이 세상이라면 눈 안쪽은 사람의 영역입니다. 사람의 영역에서는 생각이 으뜸입니다. 으뜸은 사람마다 서로 달라서, 보는 것에 대한 반응 또한 서로 다릅니다. 보이는 것은 하나인데, 보고 싶다거나 보기 싫다거나 못 본 척 시치미를 떼기도 합니다. 늙음 때문일까요. 아니면 낡음 때문일까요. 나는 자꾸 고개를 돌리고 맙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귀를 닫습니다. 겁먹은 하루가 안으로 돌아앉습니다. 안으로 돌아앉는다고 바깥의 일부가 아닐 순 없습니다. 시간은 안팎 어디서도 고르게 흐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시간 말입니다. 시간은 그 무엇보다 공평합니다.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시간 앞에 영원할 수 없습니다. 영원은,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 없이 많은 신화(神話)가 만들어진 것도 그래서입니다. 상상으로 빚어낸 신화의 뿌리에는 사람의 욕망이 있습니다. 신화를 먹고 자라난 온갖 신(神)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있을 수 없는 영원처럼, 신화 속의 신(神)들 역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신의 세상에 이르고픈 소망은 허망합니다. 신의 세상을 갈구하는 지극정성을 이 세상에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별은 상상으로 그려낸 판타지가 아닙니다.

 

신화에 등장했다고 해서 지구라는 별에도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상상 속 캐릭터는 상상의 세계에 남겨두어야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상상과는 무관하게 움직입니다. 날씨도 계절도 만남도 이별도 심지어 죽고 사는 명백한 갈라짐조차도 상상과는 무관합니다. 어쩌면 그 무관함 때문에 상상과 현실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안과 밖을 경계로 나와 나 아닌 것들이 나뉘는 것처럼, 상상의 틀로 담아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나뉘고 갈라서며 한없이 부대낍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리도 깜깜한 요지경(瑤池鏡) 속 세상을 어찌 알겠습니까. 어린왕자가 살았다는 소행성 B612조차 아득하기만 한 내가 말입니다.

 

뉴스에 비친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기기묘묘한 것이 보고 듣기에 심히 참담합니다. 뉴스 속 인물들의 스토리는 판타지소설을 능가한지 오래입니다. 자식을 죽여 냉동실에 넣은 어미의 심장에는 ‘피’가 없고, 가난한 이웃들의 전세자금을 강탈한 사기꾼의 눈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야기에 뉴스를 멀리하고 삽니다. 멀리한다고 해서 멀어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만, 도리질하며 애써 눈 감고 귀 닫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감은 눈과 닫은 귀 너머로 또 다시 아침이 열립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도 꽃이 피고 벌과 나비가 날아듭니다. 세상의 일이란, 상상만큼이나 사람과 무관합니다.

 

오늘은 산책길에 비를 만났습니다. 금세 헤어질 기미가 없는 비라서 잣나무 그늘 밑에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쏟아지는 빗소리에도 개구리 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문득 ‘Alice’가 떠올랐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라 SNS를 통해 알게 된 내 친구 앨리스입니다. 지금 앨리스 가족에겐 소나기 너머의 햇살이 절실합니다. 영원할 수 없는 빗줄기처럼 앨리스 가족의 시련 또한 금세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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