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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의 광고로 세상 읽기 ⑫ : 허위과장 광고 이야기

 

1.

사람들은 광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TV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하루에 수십 번이나 광고를 만나면서도 왠지 거리감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광고가 인간의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도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어떨 땐 대폭할인이란 카피에 현혹되어, 때로는 호기심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지갑을 연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으니 말입니다.

 

광고를 꺼림직하게 여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허위과장 때문입니다. 진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제품 품질을 부풀리거나 속이는 광고. 이런 콘텐츠는 과장광고(puffery), 허위광고(falsity advertising), 기만광고ceptive advertising)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같이 물건만 팔아치우면 그만이란 판매지상주의의 산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2.

허위과장광고의 역사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흑사병(黑死病)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pest)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팬데믹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겪은 최악의 역병이었지요. 가장 피해가 심했던 건 14세기 때의 대유행이었습니다. 유럽인구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250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니까요.

 

남녀노소, 신분귀천을 안 가린 이 괴멸적 팬데믹은 당대의 생산 가능 인구를 극적으로 감소시켰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중세 유럽의 물적 토대를 이루던 장원 경제와 농노제도를 붕괴시킨 것이 페스트라고 말합니다. 워낙 단시간에 생산 인구를 급감시킴으로써 봉건제 생산양식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뜻입니다.

 

<그림 1>은 죽음의 악령이 대지를 휩쓸던 당시의 모습을 스위스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이 유추하여 그린 작품입니다. 제목은 ‘페스트’. 사람들이 이 악마적 전염병에 대하여 느꼈던 공포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7세기에도 페스트가 유럽을 덮칩니다. 특히 1665년부터 1666년에 걸쳐 런던에 확산된 페스트가 유명합니다. 기록을 보면 해당 기간 동안 전체 런던 시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이때 수많은 민간요법사, 즉 엉터리 약장사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신속한 전염병 완치를 장담하며 전단지를 뿌리거나 신문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 2>의 광고 헤드라인은 “페스트를 치료하는 유명하고 효과적인 약”입니다. 바디카피를 보면 자기들 약으로 완치된 50명 이상의 명단과 복용법을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있네요.

 

이 불치의 전염병은 감염 시 빠르면 하루, 늦어도 닷새 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항생제 발명으로 비로소 치료가 가능해진 것이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였지요. 그러니 해당 병원균의 존재조차 몰랐던 당시로서는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 수 있지요. 역병에 대한 공포심을 악용하여 이익을 편취한 명백한 허위광고인 겁니다.

 

 

3.

허위과장 광고는 세월이 흐를수록 증가합니다. 언어학자 사빈 기징거(Gieszinger)는 당시 신문들은 기사와 광고의 구분을 두지 않고 동일 지면에 교차 편집하는 에디토리얼 디자인(editorial design)이 일반적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따라 기사와 광고의 혼동이 빈번히 일어났고, 이것이 다시 광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연쇄효과를 불러옵니다.

 

이런 논란이 거듭되자 자연스레 광고는 품위가 떨어지는 행위이며 건강한 언론활동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관점이 확산됩니다. 17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유럽 각국의 신문 발행인들은 책자나 약품 등의 주요 광고를 자기 신문에 게재하는 것을 언론 정도를 벗어난 부도덕한 행위로 인식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고 광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은 19세기 중후반 미국의 ‘특허약품(partent medicines)’ 광고였습니다. 특허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약효에 대한 보증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냥 사업허가를 받고 세금을 낸다는 관례적 의미에 불과했지요.

 

특허약품의 전성기는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됐습니다. 상이군인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가 어려웠던 겁니다. 그 같은 환경을 특허약품 제조업자들이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유사 약제를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팔아치운 거지요. 광고가 핵심 도구였습니다.

 

약효도 없고 안전성도 보장 안 되는 특허약품이 왜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요. 우선 병원과 의사 숫자가 태부족했고 의학 기술이 낙후되었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상이군인들의 급박한 통증 완화 요구도 이런 약품이 범람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대부분의 특허약품은 알코올을 기반으로 아편이나 미량의 코카인 등을 함유했습니다.

 

특허약품 제조업자들은 이 같은 제품을 만병통치약에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업자는 다음과 같은 허풍선을 늘 떠들고 다녔습니다. “신문에 광고만 할 수 있으면 나는 설거지 개숫물도 엄청나게 팔아치울 수 있다구!”.

 

 

4.

이 시기에 등장한 특허약품 광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례로 자주 들어지는 것이 리디아 핑크햄(Lydia Pinkham)의 식물성 혼합액(vegetable comfound)입니다.

 

핑크햄은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퀘이커교도였던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려고 자기 집 부엌에서 액제(液劑)를 만들었지요. 호로파(Fenugreek), 나비잡초(Pleurisy root) 등의 다섯 가지 허브에 식물뿌리 몇 개와 순도 19퍼센트의 알코올을 섞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둘째와 셋째 아들 다니엘과 윌리엄이 이 약제가 돈이 될 거란 직감을 합니다. 1875년이 되자 두 아들은 어머니를 설득하여 판매용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광고는 60달러 비용으로 ‘보스톤 헤럴드(Boston Herald)’ 신문에 내보낸 거였습니다.

 

<그림 3>을 보시죠. 리디아 핑크햄의 온화한 얼굴 그림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달콤한 설득을 시도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자 마음은 여자가 압니다(Woman can sympathize with woman)” 라는 슬로건입니다. 부드럽고 공감 가는 카피로 타깃에 대한 심리적 공감대 창출에 성공한 겁니다.

 

본문 카피에서는 여성과 관련된 모든 질병과 증상을 치료한다고 뻥을 칩니다. 생리불순, 갱년기 증상, 난소 및 자궁질환, 자궁외 임신, 신장병에 이르기까지 못 고치는 병이 없습니다. 심지어 두통, 신경쇠약, 우울증과 불면증, 척추 질병, 소화불량까지 치료한다는 주장을 늘어놓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멋들어진 카피와 달리 약효가 엉터리였다는 점입니다. 다른 특허약품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위약효과(placebo effect) 외에는 치료효과가 전혀 없었으니 말이지요.

 

 

그런데도 이 황당한 약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설득적이고 달콤했던 이유가 큽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당대의 의료시스템이 워낙 낙후되었기 때문이지요. 일체의 의료 혜택에서 배제된 채, 고된 노동과 병치레에 시달려야 했던 가난한 농촌 여성들은 이 교묘한 광고에 완전히 얼을 빼앗깁니다.

 

초창기 광고에서 리디아 핑크햄은 의사처럼 보이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4년 후부터는 퀘이커교도 복장을 하고 ’이름 없는 여인‘이란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이 가짜 만병통치약은 허위과장 광고를 무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핑크햄에 대한 노래(Lily the Pink)가 대유행을 할 정도였는데,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세계에서 최고로 유명한 여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다음 순서가 리디아 핑크햄이라고.

 

판매가 크게 늘어나자 하나 남은 딸까지 모든 식구가 참여하는 가족기업이 됩니다. 이들은 교묘한 마케팅을 펼칩니다. 남에게 밝히기 어려운 은밀한 여성 질병에 대하여 리디아 앞으로 상담편지를 보내라고 유혹한 겁니다. 그러면 무료로 상담을 해주겠다고. 물론 돌팔이 지식을 동원해서지요.

 

리디아 핑크햄은 188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사후에도 수십 년에 걸쳐 ‘몸이 아픈’ 여성들의 편지가 계속 쏟아져 들어옵니다. 답장을 누가 썼냐구요? 스스로를 핑크햄이라 주장한 며느리였습니다.

 

여러 신문사들이 광고를 실어주면서 돈 대신에 핑크햄의 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이윤을 붙여 다시 도매상과 약사들에게 넘겼지요. 도매상과 약사들은 핑크햄이 등장한 광고를 환자에게 보여주면서 대대적으로 약을 팔아치웠습니다. 거짓과 과장과 탐욕의 환상적 트라이앵글이 완성된 거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판매량은 가속도가 붙습니다. 출시 10년이 지나자 연간 매출액이 (오늘날 화페가치로 2천만 달러에 달하는) 25만 달러를 넘어섰으니 말이지요.

 

놀랄 게 하나 더 남았습니다. 이 약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식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겁니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Amazon)에 가셔서 검색창에 ’Lydia Pinkham’을 한번 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물약(液劑)과 정제(錠劑) 형태로 판매되는 이 ‘전설의 약’을 직접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5.

허위과장 광고는 20세기를 훌쩍 넘어서까지 여전히 성행합니다. 로서 리브스(Rosser Reeves)의 사례가 그것입니다.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라는 공격적 하드셀 전략으로 1950년대 세계광고를 주도한 인물이지요. 그는 광고의 유일한 목적은 제품을 파는 것이라는 불퇴전의 신념을 지닌 판매지상주의자였습니다.

 

 

리브스의 대표작 중 하나가 진통제 아나신(Anacin) 캠페인입니다. 그는 1956년 아메리칸 홈 프로덕츠(American Home Products) 제약회사의 아나신 신규 광고를 맡으면서, 미디어의 총아로 부상한 TV를 주력 매체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1분짜리 광고 내내 “두통의 3가지 원인을 없애주는 빠른, 빠른, 믿을 수 없이 빠른(fast fast incredibly fast) 진통효과”를 소리 높여 외칩니다.

 

 

광고가 시작되면 신뢰감 있게 생긴 아나운서가 이렇게 강조합니다. “미국 의사들 4명 가운데 3명이 두통약으로 아나신을 처방합니다.”뒤이어 망치로 때리고 스프링으로 후벼 파고 번개가 치는 3가지 장면을 연속으로 보여주지요. 격심한 두통을 상징한 겁니다. 다음 순서는 “빠르다(Fast)”라는 글자가 나타나 이들 장면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아나운서가 다음의 멘트를 날립니다.

 

“아나신은 여러 성분이 조합된 의사의 처방과 동일합니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특수 진통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돈으로) 8200달러를 들여 제작한 이 광고는 소비자들이 지겨움을 너머 분노를 느낄 정도로 반복적 융단폭격을 거듭합니다. TV는 물론 라디오, 신문, 잡지 등 활용가능한 모든 매체를 동원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광고에 대한 대중적 혐오와 판매효과는 별개였습니다. 캠페인이 개시된 지 1년 6개월 만에 매출액이 무려 세 배나 폭증했으니 말이지요.

 

문제는 아나신 광고가 강력한 비판과 규제에 직면했다는 겁니다. “의사 4명 가운데 3명이 처방하는 진통제”라는 표현 때문이었지요. 겉으로야 이 주장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조사를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자료 편차를 없애기 위한 무작위 표집(random sampling)이 아니라, 아나신을 만드는 제약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의사들만 골라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겁니다. 통계를 이용한 기만이었던 셈이지요. 특허약품 시대와 같은 노골적 허위과장은 줄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교묘한 사술(詐術)이 시도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이 광고가 허위과장 광고를 단속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 Federal Trade Commission)의 강력한 수정 제작 명령을 받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지요.

 

6.

21세기에 들어와서는 허위과장이 줄었을까요. 별반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광고가 물건을 파는 칼과 창으로 존재하는 한, 허위와 과장은 뿌리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해서는 2가지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광고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입니다. 미국 광고계의 존경받는 리더였던 레이먼드 루비캄(Rubicam)은 광고인의 도덕적 입장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을 존경하던 후배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Ogilvy)를 만나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다음의 신념을 토로합니다.

 

“광고인들은 올바르게 행동할 책임이 있어요. 나는 평생동안 공중(公衆)을 현혹시키지 않고도 제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을 광고를 통해 증명해보였습니다.

 

두 번째는 소비자의 대응입니다. 허위과장 광고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시민적 역량을 말합니다. 속지 않는 것은 기본,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헛짓 하는 광고주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21년 N유업이 자사 요구르트가 코로나19 억제효과가 있다는 근거 없는 연구결과를 주장하다가 된서리를 맞았지요.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한 행정처분과 고발조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악덕 기업들이 진짜로 무서워하는 것은 지켜보고 행동하는 소비자들의 대대적 불매운동입니다. 지난 수년 간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런 응징의 기억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동규 동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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