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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평범의 이데올로기. 그 선한 의지의 성공

127. 달짝지근해: 7510- 이한

 

예상 밖 흥행 안타를 치며 여름 영화시장을 간신히 연장전으로 끌고 가고 있는 ‘달짝지근해: 7510’의 콘셉트는 의도된 시대착오성이다. 일단 7510이란 것도 주인공 남녀 이름의 발음에서 따왔다는데 이것조차 일부러 시대착오적인 척 구는 것이다.

 

주인공 캐릭터는 더할 나위가 없다. 차치호(유해진)는 방안에 수십 개의 자명종을 놓고 살아가는데 1시간 단위로 일정을 기억하고 소화하는 성격이어서 시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도 전자시계 카시오이다.

 

몰고 다니는 차 역시 단종됐어도 한참 전에 없어진 모 회사 브랜드 프라이드이다. 차치호는 과자 회사에서 과자 맛을 내는 연구원이며 집에서는 히키코모리, 회사에서는 ‘왕따’인 인생으로 살아간다.

 

차치호와 관련된 모든 것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대략 설명되며 영화는 보통 초반에 이야기에 나올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작품이 나아갈 방향을 관객들에게 사전에 브리핑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 만들기의 제1 법칙이기도 하다.

 

 

이 영화 ‘달짝지근해: 7510’은 초반부만 보면 영화가 1970, 80년대 배경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공간도 약간은 ‘달동네스러운’ 곳이되 운치가 있으며 다소 서민적이지만 그렇다고 궁색하지는 않은, 그래서 예스럽지만 지금도 볼 수 있는 동네 같은 곳으로 설정하고 들어간다.

 

혜화동 위쪽 낙산 주변의 산동네로 보이는 영화 속 두 남녀의 공간은(둘이서 카풀 아닌 ‘밥풀’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사는 곳이 같은 동네라는 얘기다.) ‘올드&뉴’스럽고 풍족함과 결핍의 중간쯤이며, 행복과 외로움의 그 어디쯤으로 설명된다.  

 

그렇게 공간을 슬쩍 뭉개 놓음으로써 감독과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자신들(감독 이한, 시나리오 작가 이병헌)의 이야기가 꽤나 (순정) 만화적이며 판타스틱하다는 암시 아닌 암시를 깔아 놓는다. 그러니 심각한 표정을 짓고 볼 필요는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결코 사회적 논쟁을 요구하는 작품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논쟁을 좀 피해 가자, 그럼으로써 사회적 피로도를 좀 가라앉혀 보자는 식의 주장을 우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종종 가치 지향성 보다 유용성으로 판단되기도 하는데 엄밀하게 적용하면 ‘달짝지근해 7510’은 뛰어나거나 문제적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논할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시기에 이 영화가 왜 필요한 가, 그 쓰임새의 정도가 높으냐 낮으냐를 두고 판단할 영화인 셈이다.

 

대체로 앞에 부분은 평론이, 뒤에 부분은 대중들이 결정한다. 이 영화가, 이런 시기(한국 영화가 죄 실패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100만 이상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일단 대중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크고 또 그건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복잡하게 얘기할 것 없다. 영화는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재미’는’ 있다. 세대에 따라서 꽤나 킬킬대며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킬킬댐’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여자관계에 어설픈 차치호는 처음 만난 유부녀 아닌 유부녀, 나이 든 싱글맘(딸이 고등학교 사격 선수다.)인 일영(김희선)에게 이런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둘이 좋다고 웃어 댄다. 그것도 김밥 집에서.

 

“김밥이 착한 일을 하며 가는 곳은 어디게요?” 나중에는 그 반대되는 질문도 한다. “김밥이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어떻게 되게요?” 힌트를 주겠다는 요량으로 차치호는 참기름을 사 와서 테이블에 놓기도 한다.

 

 

위의 에피소드는 이 영화가 꽤나 의도적으로 올드 패셔너블한 정서를 자극하고 있으며 그 브릿지, 다리를 통해 컨템퍼러리(comtemporary : 동시대적인) 한 정서를 사냥하고 싶어 한다는 의도를 드러 낸다.

 

이는 곧잘 만 하면 전 세대를 통틀어 관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인 바, 그러기 위해 감독 이한은 더욱더 키치(kitch)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품위 따위는 벗어던지고 보다 장난스럽고 잔재미 위주로 가야 한다며 작품을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배치된 것이 서브플롯의 캐릭터들, 조단역의 배우들이다. 동생을 뜯어 먹으며 살아가는 차치호의 형(차인표)이나 일영의 남자이자 딸아이 진주(정다은)의 아빠로 올림픽 기간마다 나타난다는 뱀 장사 남자(정우성)가 양대 산맥이다.

 

차치호의 회사 상사이자 인사부장 정도로 보이는 남자(진선규)를 비롯해 연구원 선배(이준혁), 영화 내내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난 적이 없는 과자회사 사장(김기천)도 뛰어난 감초들이다. 약국집 약사(염혜란)는 웃기고, 이웃집 ‘썸남’(임시완)과 ‘썸녀’(고아성)은 ‘차라리’ 웃긴다.

 

 

이들 모두는 차치호와 일영의 앞뒤를 ‘달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영화적 재미를 백업하려 애쓴다. ‘달짝지근해: 7510’의 진정한 페이스메이커들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어진 것은 순전히 이들 조단역의 역할이 컸다.

 

영화의 성공에는 물론 유해진의 바보스러운 연기와 김희선의 해맑은 표정이 주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상당히 ‘모험적’ 선택이었는 바, 영화를 본 100만 관객 이외의, 현재의 다른 잠재 관객들 중 상당 수로부터는 이 둘의 캐스팅이 정말 올바르냐고 묻는 질문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해진과 김희선의 키스신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한 마디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상당히 차별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것인 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이 부분은 영화를 보면 금방 해소될 안건이긴 하지만 극장에 가기까지 꽤나 높은 ‘허들’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병헌-이한組는 젊은 감독답게 그야말로 ‘파격적인 파격’을 가져오겠다고 생각했고 그 실체가 두 남녀 배우가 갖는 이상(異常)스러운 이상(理想) 적 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 결단은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 배우의 캐스팅은 결과적으로, 배우 유해진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그가 빼어나게 잘 생긴 외모는 아니라는 점에서) 新 미녀와 야수 버전, 중년의 유부녀 미녀와 동정남 야수의 버전, 그리하여 아주 극한으로 밀어붙인 평범한 미녀와 야수의 버전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했다.

 

그 실천적 평범함, 평범의 이데올로기가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며 궁극으로는 이 영화가 꽤나 진지한 선(先)의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공유하게 한다.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갖는 최고의 미덕이다. 재미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음 얘기가 된다.

 

캐릭터 배치와 공간 컨셉의 설정에서 다소 억지도 있다. 이건 무리다 싶은 부분도 적지 않다.  일영이 일하는 직장은 무슨 캐피털 회사 같은 제2금융권으로 하루 일과가 추심 업무다. 일영은 직장 상사(윤병희)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까지 하는데도 회사의 분위기가 시종일관 밝다.

 

빚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회사, 그 자본주의의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차치호의 캐릭터도 너무 바보스러운 ‘영구’처럼 일관한다. 유해진의 연기가 다소 과장스럽게 보이는 이유이다. 톤 앤 매너의 조절이 필요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지지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당신 미쳤어?라고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자신도 공감한다고 할 것이다. 앞뒤 사람들은 영화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어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앞의 사람들은 영화를 논할 때 ‘무엇을 위하느냐’에 비중을 두고 뒤의 사람들은 ‘지금 필요한 것’에 무게를 준다. 현재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극도로 피로한 시기이다. 어쩌면 지금은 영화가 위로와 휴식을 주는 무엇이 되는 때 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휴식 용이다. 그렇다면 ‘달짝지근해: 7510’이 그렇게 섬세하게 전략을 짰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코끼리가 뒷걸음질 친 면이 없지 않다. 뭐 어떻든 좋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이상주의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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