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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용 박사의 ‘스페인‧포르투갈 답사 여행’ ⑬ 답사일지(7월 13일)

  • 등록 2023.11.21 14:00:30
  • 14면

Granada를 떠나 Bilbao로 가야하는 날이다. 시간을 조금만 더 낼 수 있었다면 Costa del Sol도 볼 겸 Picasso의 고향 Malaga에 가서 그곳에서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Generalife도 끝장을 보고 올 걸.

 

여행자에게 아쉬움은 언제나 함께하는 감상이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의 miniature인 것. 시인들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이 내려올 때는 보이고, 내가 이름을 불러 주어야 꽃은 내게로 와서 꽃이 된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도 했는데 아는 것이 부족한 인사가 어찌 꽃을 내 곁에 모두 부를 수 있고,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 있겠는가.

 

stop over 시간까지 있어 여유가 있다. Barcelona baguette sandwich 공항에서 한쪽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Alhambra의 단상들을 정리한다. 오늘은 아직 많이 걷지 않아 절뚝거릴 뿐 발의 통증도 견딜만하다.

 

Alhambra

 

나는 동·서양의 많은 고궁들을 돌아보았다. 사찰과 교회, 모스크 등 많은 종교 시설들도 두루 둘러볼 기회를 가졌었다.그런데 이 Alhambra라는 하나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Muslim 왕궁의 모습은 그중에서 단연 특별하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Sultan의 궁궐의 외형은 소박하다. 소박하다기보다 그 안에 이런 궁궐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그 안으로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 발길이 스스로 제자리에 멈춰 선다.

 

이전까지 보아왔던 서양의 많은 궁궐들은 외형부터 온갖 부조와 석조 기둥들로 할 수 있는 한 화려함을 자랑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기한 회화와 조각상들 금은보석들로 휘황함을 경쟁하는 법이다.

 

많은 종교 건물들도 빽빽하게 도열한 성자들과 신앙을 독려하는 성화들로 치장되고 Gothic형 천장은 하늘을 찌르는 높이로 위압한다. stained glass는 선별된 빛으로 신심을 우려내게 마련이다.

 

그런데 왕궁과 종교시설이 특별히 구별되지도 않는 이 왕궁에는 그러한 모든 것이 없다. 어떤 보물도, 성화도, 인위적으로 걸러져서 들어오는 햇빛도 없다.

 

깔끔하고 천연스럽다. 돌이 있고 물이 있고 천연의 햇빛이 있다. 벽면과 기둥, 들보, 모든 곳을 덮은 다양한 Arabesque pattern의 음·양각 사이에서 간간이 열을 지어 행진하는 듯한 Quran 구정의 calligraphy를 찾아볼 수 있지만 선동적이지 않다.

 

그저 pattern 속의 또하나의 pattern으로 보일뿐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을 쪼아서 만들어진 무늬들이 그들끼리 울려 스스로 화려함을 완성한다.

 

어떤 장인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들은 고통스러웠을까?

 

결국 Sultan의 잔혹한 채찍질이 이런 경지를 만들어낸 것일까? 목숨을 걸고 천 길 낭떠러지 위에 매달려 마애불을 쪼아대던 우리 신심 깊은 석수장이의 간절한 마음과 이들의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었을까? 어떤 생산력이 이런 작업을 뒷받침했을까 따위 수선스런 생각들은 접어두기로 하자.

 

물이 높이 치뿜어 오르게 하지 않고 조용히 솟아오르다 흘러내리는 분수를 설계한 Sultan의 정서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저수조에 담겨 작은 물결하나를 만들지 않는, 물로 만든 거울에 수시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싶었을까? 그것은 건조한 이곳의 바람에 물기를 입히려는 과학이었을까?

 

나는 늘 하나의 건축물은 그 건설자의 철학과 문화적 수준을 드러낸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영주의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돌며 동행들에게 이 두 개의 건축물에서 불교와 유교 철학의 차이를 읽어보라고 우격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 우리들이 끝도 없이 지어대는 아파트의 철학을 돌이켜보라고도 했다.

 

‘간결하게 정돈된, 그러나 풍부한 교양과 철학이 만들어내는 화려함’ 정도로 이 왕궁을 만들고 완성해간 주인들의 문화수준을 추정한다면 그들에게 누추한 찬사가 될까? 이 건물은 분명히 화려하나 천박하고 허풍스럽지 않다. 교양이 있고 기품이 있다. 종교적 사상을 표현하고 부정하지 않으나 그에 몰입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극도로 노동집약적이고 치밀하나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감상자에게 경쾌한 설득의 대화를 걸어온다.

 

CarlosV의 궁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거니와 당시 Islam문화가 가지고 있던 Catholic문화권에 대한 일반적인 우월성을 되새겨 본다면 두 왕궁의 대비를 이해하는 근거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과 그 승패 그리고 문화의 우열은 비례성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것도 같다.

 

여기에 이 문화재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각을 사서(史書)에서 살펴보자.

 

This part of the palace had a distinct public purpose : administration of justice, council meetings, and bureaucratic tasks. These palaces comprise the "royal house or alcazar" where the Nasrid Sultans' domestic and official life took place, they consist of three palaces built in different periods, which are configured a single court space.

 

요약컨대 Gaudi에서나 Alhambra에서 보듯이 명품의 탄생을 위해서는 정련된 철학과 정열, 의지 그리고 인재가 모이고 story가 만들어지는 시간의 경과(different periods)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유튜브로 날아오는 뉴스에 마음이 편치를 않다. 호우 피해가 대단한 모양이다. 어째 이렇게 간난(艱難)이 심하다는 말인가. 폐석회 현장은 별 일이 없는 것인지, Bilbao에 도착하면 문자라도 해 보아야겠다. 이런 걱정의 연속에서 벗어날 알이 오기는 할까.

 

Bilbao

 

Spain Basque(스페인어 : País Vasco, 바스크어 : Euskadi) 광역자치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광역으로 따지면 100만이 넘고 도시만으로는 35만, 스페인에서는 지하철이 있는 6대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지중해의 Barcelona와 달리 대서양에 접한 항구도시이다.

 

Basque족의 분리 독립운동과 무장 항쟁, 철강 산업의 쇠퇴와 부활의 몸부림으로 Guggenheim museum을 유치했다는 따위, 문제 많은 곳인 듯한 뉴스들만을 접해왔던 터라 낙후하지 않았을까 했던 생각은 공항에서부터 깨져나간다.

 

작지만 깔끔한 공항(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공항 또한 건축계에서는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통과하여 택시로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도시의 인상이 상쾌하다. 푸른 자연들과 제법 규모 있는 중세풍의 건물들, 그 사이에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섞여있는 현대적인 빌딩들.

 

택시 기사가 저는 합기도를 2년 했단다. “블랙벨트겠구나. 무섭다”라고 추어주었더니 “하나 둘 셋 넷”, 우리말을 제법 바르게 외워 보인다. 나는 태권도를 했다니까 저는 합기도가 더 좋단다. 아무것이든 Gracias!

 

NYX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호텔의 위치가 아주 좋다. City Hall 앞의 큰길가에, 지척에 제법 큰 강이 흐른다. 도시도 자그마하고 Barcelona에서처럼 호텔 찾아 돌아오느라 애먹을 걱정은 전혀 없겠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잠깐 주변을 둘러보는 기분이 상당히 상쾌하다.

 

좋은 도시다. 고풍(古風)과 자연이 잘 어우러져 아주 아름답고 깨끗하다. 첫 인상에 이런 도시는 오래간만이다. Heidelberg, Salzburg…, 깨끗한 것은 Singapore가 울고 갈 것 같다.

 

도시 중앙을 가르며 흐르는 짙은 녹색의 강(Nervión river)에 나무토막 하나 그 흔한 페트병 하나, 비닐 조각들 그런 쓰레기가 보이질 않는다.

 

해가지자 청소차와 복장을 갖춰 입은 요원들이 말끔하게 온 도시를 물질하고 낙엽하나까지 빗자루질을 해댄다. 아니 하루종일 그러는가 싶다. 해떨어진 강가 공원의 아이들 놀이시설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부모들의 웃음소리가 객이 듣기에도 즐겁다.

 

거리에 설치된 전광판에 저녁기온이 19도라고 알려 주더니 다음날 낮에는 37도까지 치솟는다. 그런데 답답하지가 않다.

 

 

 

 

발의 통증이 또 심해지고 있다. 내일 Guggenheim까지는 1.4㎞라니까 주변을 돌아보면서 걸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내일 아침에 발과 타협해보아야겠다. 인천은 별일이 없다는 소식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인천시장은 DCRE 개발관련해서는 아직도 묵묵부답이라지만.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돌아가는 대로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글·사진 /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 이사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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