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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장현과 길채

 

달력에는 내일이 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고, 겨울 다음은 봄이다. 그래서 산다. 오늘이 아니어도 내일이 있으니까.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도 거기서 싹이 틀 것이다. 오늘과 내일의 아스라한 틈에서.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경계에서. 지고 있는 선수가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맬 수 있음도 그래서다. 아직 후반전이 남았으니까. 다시 따라잡을 기회가 남았으니까. 다시 달릴 수 있고, 다시 꿈꿀 수 있고,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경기장에 있는 그 ‘다시’가 우리네 삶에는 없다. 사람이라 이름 붙여진 동물에게 ‘다시’란 없다. 언어와 국적에 상관없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별 어디에도 없다.

 

늘 아쉬운 것도 그래서겠지. 한 번뿐인 청춘이라서. 아쉽다고 해서 다시 살아볼 수 없는 게 삶이라서. 돌아볼수록 아쉬운 것투성이다. 나의 지난날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풀림 보다는 막힘과 엉킴과 틀어짐이 많았다. 그것이 ‘살아내는 재미’라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살아내는 재미’가 두렵기 시작하더라는 고백은 해야겠다. 그래서일까. 열 번 막히고 스무 번 엉키고 서른 번 틀어지더라도, 한 번쯤 술술 풀어졌으면 좋겠다. 막힌 골목 끝에 스미는 달빛처럼. 엉키고 틀어진 안개를 가르는 바람처럼.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들의 겨울에도 따뜻한 입김으로 언 손 녹이는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난만큼이나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게 아쉬움이다. 그래서 늘 당부한다. 아비의 삶처럼 아쉬움으로 주눅 들지 않기를. 망설임 없이 뚜벅뚜벅 나아가기를. 큰아이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를 데려왔을 때도 그랬다. 아비랍시고 딱히 해 줄 말이 그것 말곤 없었다. 어떻게 살아도 좋은 일이다. 부디 아비처럼 살지는 말아라. 그런 아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랑에 들뜬 젊은 청춘들의 눈망울은 한없이 푸르렀다. 나는 아이들과 마주하는 내내 나뭇잎처럼 싱그러운 두 청춘들의 앞날에 막힘없기를 소망했다. 간절하고 또 절실하면 때론 이뤄지는 것이 소망 아니던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엇갈린 운명처럼.

 

도저히 비껴갈 수 없는 운명도 드라마는 바꾼다. 죽음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살림으로 바꾸는 힘은 시청자들의 바람에 있다.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소망이 작가로 하여금 대본을 다시 쓰게 한다. 때론 방송 분량을 늘려가면서까지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최근에 끝난 드라마 연인(戀人)에서도 그랬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을 꿈꾸지 말아야 할 까닭 또한 없다. 나는 드라마 바깥의 모든 이들이 길채 낭자와 장현 도령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든 날들이 그러할 수 없다면, 손꼽아 기다리는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부디 찬란하게 타오르기를. 뜨겁게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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