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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파리망명객, 이유진의 자전에세이

파리의 망명객하면 흔히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를 떠올리곤 한다.
관용의 뜻을 지닌 '똘레랑스'라는 말을 한참 인구에 회자시키고 지금은 귀국해 시사프로그램 방송 진행자로, 각종 진보매체에서 글쓰기로 우리사회의 뒤틀린 모습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그다.
여기 또 한명의 파리 망명객이 있다.
이유진,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한영길 사건' 과 관련해 무고하게 북한공작원으로 몰려 파리에서 망명객으로 살아온 그가 자전적 에세이 '빠리 망명객, 이유진의 삶과 꿈'(필맥 간)을 냈다.
엄청난 민주화 투쟁을 벌인 것도 아닌 그가 독재정권 시절 조작 사건에 꿰어 조국에서 버림받은 망명객 신세로 30년 이상을 이국 땅에서 살아온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한 책이다.
이념 과잉의 시대, 국가 안보를 구실로 레드 콤플렉스를 조장해왔던 지난 시대의 정권 하에서 양산된 수많은 미제 사건들은 실상 간첩혐의와 무관한 정권안보 차원에서 조작,과장된 사건들이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작 사건은 사건 당사자들의 피폐된 삶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송두리째 파괴한다는 점에서 인권 유린의 성격이 짙다.
이유진은 '내 운명을 바꾼 엉성한 사건'에서 3년 전 그가 26년 만에 귀국하기까지 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중앙정보부의 '한영길 조작 사건'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사건은 1979년 당시 코트라의 파리주재 부관장이던 한영길이 가정불화로 부인이 세느강에 투신자살한 뒤 문책성 소환을 당하게 되자 정치적 망명을 시도하다 중앙정보부에 잡혀 서울로 압송된다. 이때 중앙정보부가 한영길의 기자회견을 통해 대학 선배인 간첩 이유진이 후배인 자신과 딸을 납치해 파리 주재 북한 통상대표부로 데려갔다고 발표한 것.
이에 대해 그는 중정의 조작이라고 반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르몽드' 등 프랑스 신문들도 수차례에 걸쳐 조작의혹을 보도했지만 그는 이후 조국에서 추방당하고 교포사회에서도 고립돼야 했다.
이렇듯 억울한 누명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이지만 조국에 느끼는 감정이 환멸만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랬다. 지나온 인생이 억울하다고. 나는 억울할 것 없다고 했다. -- 정작 억울한 것은 국내에서,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온몸 온정신으로 싸우면서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국내의 민주인사들일 것이다. 요즘 그나마 나를 거부해온 조국의 울타리가 낮아지는 것은 다 그들 덕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고작해야 반독재 투쟁을 하는 잡지 몇권을 발행하고 몇몇 한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을 모아 군부독재 규탄대회를 벌인 정도일 뿐인 자신은 민주화운동의 말석에 참가한 것 뿐이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유진 문제는 진실을 은폐, 호도하고 개인을 억압하는 공작 정치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며 인권문제이지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 따라 견해가 엇갈려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한 파리 동포신문 김제완 편집인의 말은 타당하다.
따라서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일은 그의 말처럼 민주화운동에 혁혁한 공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 탄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방기해온 우리들의 남은 몫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진상이 가려진 제2, 제3의 이유진이 있을 수 있기에 진실규명의 노력은 필요하고 그것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예우일 것이다. 336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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