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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과거 일제의 수탈 역사에서 시민의 공간으로…인천 남동구 ’소래철교’

1937년 만들어진 소래철교...소금, 어패류 등 일제 수탈의 상징
6·25전쟁 당시 소래철교 이용한 피난가기도 해
1995년 협궤 수인선 폐선 이후 인도교로만 사용돼

 

25. 과거 일제의 수탈 역사에서 시민의 공간으로…인천 남동구 ’소래철교’

 

서해를 품은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그 옆으로 놓인 철교에는 수인분당선 지하철이 지나고, 오래된 소래철교는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소래철교는 협궤 수인선 흔적의 대표 명소이자 소래어시장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과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을 잇는 철교로 1937년 만들어진 소래철교는 원래 이름은 경동철교였다. 경동철도주식회사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소래포구 인근 염전과 갯벌에서 생산되는 소금 및 어패류 등의 반출을 목적으로 건설됐다. 소금은 화약의 원료이기에 일제에게 꼭 필요했다.

 

폭은 1.2m, 길이는 126.5m(남동구 58m, 시흥시 68.5m), 높이는 10m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1435mm로 이를 기준으로 좁으면 협궤, 넓으면 광궤라고 한다. 반면 협궤 수인선은 궤간 거리는 762mm였다.

 

당시 소래포구(당시 노렴나루)를 통해서만 시흥 월곶으로 갈 수 있었다. 마땅히 우회도로나 인도교가 없어 조선총독부 전매국에서 소래철교 위에 널판을 깔아 통행하려고 했지만, 철도국에서 이를 반대해 무산됐다.

 

6·25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소래철교를 통해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이때 소래철교에 널판을 깔아 일시적인 인도교의 역할을 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인도교로도 소래철교를 이용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도로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협궤열차 운행이 감소됐다. 그러다 1995년 협궤 수인선이 중단되면서 철로의 기능을 잃었다.

 

수인선 폐선 이후 소래포구와 월곶을 잇는 인도교로 사용되고 있다. 1999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위험시설 판결을 받았지만, 그 후 남동구청에서 예산을 들여 2003년과 2006년 보강 공사를 했고, 2015년 경관 조성 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연인들이 함께 손을 잡고 소래철교를 건너면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과 다리를 건너면서 소원을 기도할 때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배가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으며,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주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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