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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농담] 그럼에도 대학원에 올 후배들에게

 

대학원에 가도 될지 묻는 후배들에게는 “대학원 오지 말라”고 하는 게 낫다. 당장의 수입도 미래의 기약도 없는 생활이 초래할 고통의 무시무시함을 충분히 알려주는 게 낫다. 겁을 주어도 어차피 입학할 사람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입학할 것이므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종국에 연구자로서 만나게 되므로.

 

연구자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해답을 찾는 자다. 짧게는 수 십 년, 길게는 수 천 년의 앞선 대화를 복기하고 향후 이어질 수 천 년의 대화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작게는 스스로를, 크게는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들기를 소망하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밝히는 것이 그의 소명이다. 본인만 어여뻐할 어떤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견디지 못해 수 년을 쏟는다. 막스 베버는 이 마음을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당하는 기이한 도취”라고 했다.

 

과학 강국을 표방하면서 R&D 예산은 대폭 삭감하는 정부의 모순 앞에서 청년 연구자의 삶은 더욱 불안정하다. 장비 구매는 고사하고, 있던 장비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졌다. 젊은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문은 여느 때보다 좁다.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는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다시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보며, 이번 예산 삭감이 도대체 어떤 합리적 검토를 거쳤는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졸업식장에서는 젊은 연구자의 비판이 터져나왔고, 저들은 기어이 입막음으로 대응했다.

 

뒤늦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산을 증액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과학기술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예산을 대폭 줄여야 했지만, 내년에는 다시 늘려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발견했나 보다. 예산이 늘고 주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젊은 과학자의 몫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젊은 연구자들이 겪는 불안정과 부당한 폭력이 ‘선도형 R&D’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성장통’이라고 한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선도형 R&D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불합리가 성장통이 되는가. 추측건대 그 성장통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이루어져야 하나보다. 연구자가 비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입을 틀어 막는 걸 보면 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구 현장과의 소통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새해 다짐을 꼭 이루시길 바란다. 신속한 입막음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정부의 소통 또한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서툴더라도 조금씩 소통의 노력을 보여주시라. 공감을 바라진 않는다.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발을 떼는 졸업식에 닥친 추위를 정부 관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므로. 연구자들의 “기이한 도취”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니 우리 마음을 꺾지 말자. 애당초 이 마음은 졸업식을 찾아 온 저들이 입을 틀어 막는다고 꺾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후배들에게 대학원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할 이유가 두어개 늘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 읽고, 쓰고, 말할 것이다. 저들의 불합리와 입막음에 지치지 말자. 지금을 기록하고 이어질 대화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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