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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가짜 뉴스, 진짜 뉴스

 

뉴스(News)의 의미는 ‘새로운(new)’에 방점이 있다. 뉴스(News)란 ‘New’의 복수 형태로부터 유래하여, 14세기 중세 영어에 처음 등장하였다. 학창 시절 흥미롭게 들었던 뉴스(News)의 어원, 즉 동서남북(North, East, West, Sout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는 건 잘못된 속설이란다. 뉴스의 어원을 이렇게만 알았던 나는 여기서부터 가짜 뉴스에 휘둘린 셈이다.

 

신문 방송 등 미디어가 제도로 진화하면서 뉴스는 그 생태가 자못 복잡해졌다. 뉴스는 뉴스 가치(News Values)에 의해 선택된 사실(사건)이다. 즉, 어떤 새로운 사건이 뉴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해야 하고, 선택된 뉴스(버려지는 뉴스도 많다)도 보도의 조건과 관습에 맞게 언어화하고, 보도와 소통의 틀에 맞도록 재구성한 이야기가 되어,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에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뉴스가 된다.

 

가짜 뉴스(fake news) 논쟁이 급증하고 있다.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가짜가 개입할 수 있는 소지가 전혀 없다 할 수 없겠다. 정치인들은 정쟁의 시작과 끝을 가짜 뉴스 논쟁으로 소모한다. 가짜 뉴스 없이는 아예 정치를 하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심지어 내가 말하는 건 진짜 뉴스이고 상대가 말하는 건 가짜 뉴스라는 식으로 말하는 정치인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상대를 비방하면서 가짜 뉴스는 박멸해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박멸의 대상이 뉴스인지, 상대방 인물인지 오락가락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민 것’을 ‘가짜’라고 설명한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사실’로 보도하는 것, ‘있는 사실’을 전혀 다른 사실로 보도하는 것이 악성 가짜 뉴스의 원형이다. 이를 악성이라고 함은 나쁜 의도로 음모와 공작의 차원에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뉴스 소통 생태에서는 이런 부류의 악성 가짜 뉴스 말고도 가짜 뉴스로 치부되는 뉴스가 넘쳐나도록 다양하다. ‘진짜 가짜 뉴스’ 말고도 가짜 뉴스로 몰리는 뉴스가 많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일종의 생태 환경이 되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근대를 표상하던 합리적 이성과 그것을 인식론으로 정립한 구조주의가 퇴조하고 절대 객관이 갖는 맹점을 반성하면서, 이른바 탈근대(Post-modernism)와 후기 구조주의 패러다임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어떤 사실을 드러냄에 있어서 절대가치가 아닌 상대 가치를 주장하고, 객관성을 넘어서는 주관성의 존중이 강화되고, 그 주관성을 합리화하는 해석의 자유와 주체의 존중 등이 일반화되면서, 나와 다른 관점의 뉴스들이 생겨난다. 그것이 나의 이해와 맞닥뜨려질 때, 가짜 뉴스로 보일 수 있다. 가짜 뉴스가 일종의 생태 환경이 되었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그러나 이것을 통째로 가짜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좀 문제이다.

 

가짜 뉴스는 형식적 범주(논리)로만 따지면 진짜 뉴스가 아닌 뉴스이다. 그러면 진짜 뉴스라고 했을 때, 그 ‘진짜’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걸 명쾌하게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때의 ‘진짜’란 말은 잘 개념화되고 논리화된 용어(terminology)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이 쓰이는 화용적 맥락을 보면, 그냥 일반어보다도 더 일반화된, 그래서 일반 대중의 감정과 정서 자질까지 그 의미에 가담하는 통속적인 말에 가깝다. 예컨대, “진짜 미치겠네!”라고 한다든지 “너 진짜 웃긴다.” 또는 “너 진짜로 진짜 좋아하네. 요즘 세상에 진짜가 어디 있니?” 등의 발화에서 진짜가 무엇인지를 논리 실증적으로 밝히기는 진짜 어렵다.

 

가짜의 반대어가 진짜이고, 진짜의 반대어가 가짜이다. 진짜라는 말의 의미론적 모호함이 이러할진대, 이 말과 대척의 쌍을 이루는 ‘가짜’라는 말도 모호하고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짜 뉴스의 ‘가짜’를 의미론적으로 명료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라는 말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거짓말 뉴스에서부터 관점과 생각이 다른 뉴스를 그냥 통칭하여 ‘가짜 뉴스’라고 부를 일이 아니다. 우리가 통상 일컫는 가짜 뉴스를 정밀하게 하위 범주화하여, 잘 개념화된 논리적 명칭을 지금부터라도 지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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