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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예술엿보기] 지역 미술관을 나만의 미술 아지트로 만들기

작품,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까

 

예술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이 칼럼을 읽고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인데, 그럼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하는 걸까?

 

대개 전시회라고 하면 국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고흐, 모네, 샤갈….. 등 유명 화가의 전시를 떠올린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원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조금 덜 유명해도 좋은 작품에 기획까지 참신한 전시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와 더불어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자연을 감상하거나 멋진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의 대규모 유명 화가 전시도 좋지만 경험자는 동감할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채워서 그림보다 사람 구경만 하다 오거나 관람료가 너무 비싸서 망설였던 경험. 반면에 의외로 지역의 사설미술관들 중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미술관은 2023년 12월 기준으로 286개(전국), 문화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미등록 미술관과 갤러리를 포함하면 2400개가 넘는 장소에서 매일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개인이나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들 중에는 국공립 미술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다양한 시도를 하는 미술관도 많다. 이러한 지역 사립미술관을 알아두면 국내에서 보기 드문 세계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바로 나만의 미술 아지트를 만드는 거다.

 

경기 지역 미술관의 좋은 사례, 과천 K&L 뮤지엄

 

그래서 경기신문 독자들에게만 필자의 미술 아지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사립미술관인 과천의 K&L뮤지엄이다.

 

미술관의 외관과 내부시설이 모던하고 아름답다. 외관은 가운데 전면 유리와 양쪽의 벽돌 벽으로 개방적이면서도 힘 있어 보이고, 내부의 부드러운 원목 계단의 따뜻함을 느끼며 오르내리다 보면 각도가 바뀌는 때마다 새로운 시퀀스가 보여서 잠 흥미로웠다.

 

 

3층에는 아트숍인 그라바도스샵과 북 스토어가 있는데 다양한 도록과 판매 중인 판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는 1층부터 2층까지 연결되는데 열린 공간이어서 2층에서도 1층의 작품을 내려다볼 수 있고, 1층에서도 2층의 작품을 올려다볼 수 있어서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뮤지엄 1층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멋진 그랜드 피아노가 보인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곳 김성민 관장은 전시 오프닝마다 이곳에서 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미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공감각적인 공간, 이런 건 사립미술관이어서 가능한 참 멋지고 자유로운 시도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매료될 것이다. 우리 일행은 뮤지엄 측의 허락을 받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뮤지엄 안에 울려 퍼지게 하였다.

 

 

사립미술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유명 아티스트의 전시를 유치하는 것. 그것은 재정적인 뒷받침과 작가를 선별하는 감각을 모두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량 있는 사립미술관이 있다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작가들의 전시를 저렴한 비용으로 볼 수 있다. K&L뮤지엄이 바로 그런 미술관이다.

 

또한 이곳에는 쉼의 공간이 있다. 뮤지엄 3층에 위치한 카페 L과, 스페인 레스토랑 엘올리보가 그곳이다.

 

카페 엘(CAFÉ L)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손님이 많지 않다. 이런 공간에 하루 종일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더 알려지기 전에 이 카페를 즐겨 보시길)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다.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춘 미얀마의 원두를 사용하여 향긋한 풍미와 깊은 맛을 지닌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감상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그립다면 이 카페에 꼭 가봐야 한다. 특히 앉아있으면 너무나 편안한 이태리 핸드메이드 가구 Officino의 테이블과 의자는 하나쯤 갖고 싶을 만큼 탐났다.

 

 

엘올리보는 김성민 관장이 운영하는 스페인 레스토랑으로 뮤지엄 맞은편에 있다. 전시마다 약간씩 변동이 있긴 하지만 엘올리보의 영수증을 제시하면 뮤지엄 입장료가 20퍼센트 할인되고 미술관 티켓 소지자는 카페 이용 시 5000원이 할인된다.

 

Under the Tree Trunk전 

 

K&L뮤지엄은 2023년 5월에 개관 후 총체예술로 유명한 헤르만 니치,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권여현과 같은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전시했으며, 현재 세 번째 전시인 “Under the Tree Trunk”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런던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젊은 작가 빌리 바길홀(Billy Bagilhole)과 마크 생부쉬(Mark Sengbusch)의 2인전으로 5월26일까지 계속된다.

 

 

빌리 바길홀은 인물의 형상과 표정, 일상의 소재들, 동물 형상을 마치 낙서처럼 불규칙하고 자유롭게 표현한다. 일찍 세상을 떠난 벽화 화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모호한 기억과 거기서 영향을 받은 다채로운 이미지와 환상적인 색채가 특징이며, 그의 작품에서는 상실에 대한 좌절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동시에 보인다.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들이 낙서처럼 구성된 그의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상징과 이미지들은 관람자의 지난 경험을 소급하여 상상하게 하는 매력이 있으며 맥시멀리즘 작품이 주는 다양성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된 작품 중 몇 작품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마크 생부쉬의 작품은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있지만 조각의 도형들이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 빌리 바길홀과는 대비되어 미니멀하다.

 

그는 조형 작업을 할 때에도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고리와 조립식 구조로 판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상호 협력적인 관계성을 표현하였다. 반면 그의 최근의 작품에서는 알루미늄과 같은 차가운 재료를 용접하여 완성하는 작업도 보이고 있는데 이전에 추구하던 협력성 대신 전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역시 젊음은 자유롭다. 한 가지 방식과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 두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호한 기억을 되살려보기도 하고,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삶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가져보기도 했다.

 

각 지역의 사립미술관을 찾아보자

 

나는 그날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스페인 요리를 먹고 뮤지엄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멍 때리다가 피아노 음악을 감상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점심은 메뉴에 따라 가격이 차이가 있으니 점심값을 제외하고 단돈 9000원으로 전시도 보고 음악도 듣고 커피도 마시고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전시마다 할인율은 조정된다)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는 가 볼만한 사립미술관들이 있다. 휴일에 거실 소파에 누워 시리즈물을 보는 것도 좋지만, 자연과 예술과 음악과 맛을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지?

 

추신 : 본인의 지역에 가 볼만한 미술관이 있으면 덧글로 남겨주세요.

 

[ 글 = SG디자인그룹대표. 시인 권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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