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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가치의 발견

 

밤새 비를 맞고도 가지 끝 하나 끄덕이지 않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본다. 나무는 큰 줄기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검은 상처의 자국은 성한 나무의 몸통보다 몇 배나 더 많아 보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저렇듯 엄숙하며 고요히 자신의 운명을 지켜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이런 가치 발견을 위해 나는 새벽길을 걷는다.

 

문학은 인간의 운명을 탐구하는 것. 앞으로의 인생을 더욱 다각적으로 탐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산(茶山)은 사약이 언제 배달될지 모르는 유배지에서 차를 즐겼다. 그리하여 호를 다산(茶山)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왕지사 차분한 마음으로 다산(茶山)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꺼내 읽기로 한다.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 살던 다산 정약용이 고향에 두고 온 두 아들과 형과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한글로 번역해 편찬한 책이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세상을 구했던 책을 읽어라'에서는, ‘깨끗하고 이름 있는 청족(淸族)은 비록 독서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저절로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폐족(廢族)이 되어 세련된 교양이 없으면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천하게 여기고 세상에서 얕잡아 보는 것도 서글픈 일인진대 하물며 지금 너희들은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고 얕잡아 보고 있으니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 우리 집안의 글하는 전통을 너희들이 더욱 키우고 번창하게 해 보아라.’라고 가르치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어떻게 교육하고 사랑하며 효를 실천했는지 싶다. 아이들에게는 ‘착한 사람’ 만을 강조해 고생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후회스럽다. 기억에 남은 추억이 있다면 1970년대의 상황으로서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과 부모님 모시고 중국집으로 가서 자장면을 먹는 일, 그리고 경기도 용인의 자연농원을 다녀온 것이다. 그때 아버님은 흰 한복에 노란조끼를 입으셨다. 막내 딸아이는 색동저고리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작은오빠가 예뻐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모님과 아이들 우리 부부 일곱 식구는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평 없이 한 마음이었다는 게 퍽 다행스러웠다.

 

지난주에는 사위와 딸이 찾아와 불고기를 먹었다. 막내손자는 5월의 단비를 맞고 조금 늦게 왔다. 녀석은 나하고 의사소통이 가장 잘 되는 사나이다. 사위에게는 엊그제 큰 선물을 받았는지라 마침 어린이날이다 싶어 내가 계산을 하려는데 사위가 하겠다고 나서 한참 밀치락달치락 했다. 싫지 않는 밤이었다. 오랜 세월 나는 운명적으로 사람 냄새가 아쉬웠다. 그리고 가족이란 정적 갈증에 목말랐다. 그런데 딸 가족으로 인해 해소되는 밤이기도 했다.

 

내 아파트로 돌아와 고요히 생각해 본다. 군소리 없이 평생 자기 인생의 맷돌을 돌리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훌쩍 저 세상으로 건너간 아내 생각에 잠기게 된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하늘로 가는 길 그리고 가족의 가치를 나에게 깊이 있게 발견하도록 하고 떠난 그 사람 앞에 나는 심신이 왜소해지면서 ‘여자는 좋은 남편을 만드는 천재’라는 발자크의 말만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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