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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희의 향기로운 술 이야기]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간 첫 걸음

 

내가 전통주를 함께한 지도 25년이 되었다. 현재 나는 북촌에 있는 전통주갤러리에서 다양한 우리 술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매일 전통주와 일상을 함께하는 나의 삶이 참 풍요롭다. 술을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이것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행복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술이 나의 인생에 반을 차지하는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와 술의 첫 인연을 말하자면 아버지께 해드렸던 음식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어려서 자주 몸이 아파 아버지의 손이 많이 필요한 딸이었다.

 

늦은 밤 아프다는 딸을 업고 빗속을 달리던 아버지의 따뜻한 등이 생각난다. 등굣길 어지럼증 때문에 지하철 역사 나무의자에 몸을 쪼그리고 있으면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안심시켰던 아버지의 음성도 떠오른다. 아버지의 따스한 보살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시는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만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각 음식의 온도에 따라 즐기는 것이다.

 

“찬음식은 차게,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특별한 날, 우리의 식탁에는 모든 음식이 한꺼번에 올라오지 않았다. 매 음식을 그렇게 즐기셨다. 부엌에서 준비하는 사람은 힘들었지만 그 음식을 즐기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식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배우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여러 가지 도전했던 음식 중에 술도 하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막걸리를 직접 빚어 달라고 하시면서 “할머니에게 빚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된다”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때 처음 안 사실이지만 예전에 할머니도 종종 술을 빚으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술맛이 동네에서 유명할 정도로 솜씨가 좋으셨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 해주셨다.

 

할머니의 솜씨를 믿고 하나하나 차근하게 재료들을 준비했다. 재래시장에서 산 누룩을 나무방망이로 두들겨 작은 크기로 직접 빻아 햇볕에 펼쳐 놓았다. 찹쌀을 씻어 불린 다음 솔잎과 함께 넣고 찜통에 쪄서 식혔다. 준비한 재료인 찹쌀고두밥과 누룩, 물을 함께 넣어 정성을 다해 버무려 발효시켰다.

 

그러나 결과로 보면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아버지도 맛은 그런대로 합격점을 주셨지만, 술 빛깔에서 고개를 갸웃하셨다. 일반적인 술의 빛깔은 뽀얀 우윳빛이나 연한 미색인데 내가 빚은 술은 검은빛에 가까웠다. 왜, 이런 검은빛이 되었을까? 문제가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다 보니 이 세계가 더 궁금해졌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해답을 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참 어려웠다.

 

1999년 3월.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전통주 수업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할 줄은 나도 몰랐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주면서 제2의 삶을 설계하는데 구심점이 되어준 전통주. 지금도 ‘왜 술을 선택했나 ’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술이 블랙홀이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묘한 매력이 있어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을 빚을 때의 마음은 늘 새롭고, 경건하다. 자연이 함께 하는 예술이다 보니 이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매번 같은 재료를 가지고 빚지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그 세계를 접하면 깊은 바닷속의 신비로움과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제는 우리 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곳이 많이 생겼다.

 

2023년 12월 기준 우리 술 교육 훈련기관 18개소와 전문인력 양성기관 5개소가 있어 전통주의 기본 원리부터 상업양조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 시작했던 전통주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금, 더 많은 사람들과 전통주의 세계를 여행해보고자 한다. 한잔의 술잔 속 자연과 시간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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