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3 (화)

  • 구름조금동두천 24.1℃
  • 흐림강릉 27.5℃
  • 서울 25.9℃
  • 흐림대전 27.5℃
  • 흐림대구 27.5℃
  • 흐림울산 28.2℃
  • 흐림광주 27.2℃
  • 흐림부산 27.2℃
  • 흐림고창 27.9℃
  • 구름많음제주 27.8℃
  • 맑음강화 24.0℃
  • 구름많음보은 26.6℃
  • 흐림금산 26.8℃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8℃
  • 흐림거제 27.6℃
기상청 제공

[김봉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 말이 씨가 된다.

 

얼마 전에 목격한 일이다.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차례차례 앞문으로 승차했는데 한 사람이 뒷문으로 올라탔다. 얌체 같은 행동이었지만 뒷문으로 탔던 경험이 다들 있어서인지 아니면 두세 정류장만 가면 지하철로 환승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승객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때 젊은 버스 기사가 “뒷문으로 타지 마세요!”라며 한마디를 했다. 매우 짧고 굵은 지적이었다. 내가 듣기에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못 들은 척하거나 “죄송합니다!”라고 대응할 텐데 이 승객의 반응은 다소 논쟁적이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민망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버스 안을 헤치고 운전자석으로 가더니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 다른 지역 버스는 별말 없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볼멘소리를 들은 기사는 당황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뒷문으로 타면 위험합니다. 안전 때문입니다.” 이 말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앞문 승차, 뒷문 하차”라는 기사의 안전 수칙 준수와 “앞문으로 하차할 때도 있고, 뒷문으로 승차할 수도 있지”라는 승객의 임기응변식 대응이 계속 맞선다면 출근길 분위기는 이상해졌을 테고, 두 사람 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중년의 한 승객이 허공에다 외쳤다. “뒤로 탄 사람이 잘못했지. 기사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기사는 이 말에 힘을 얻었는지 즉시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기사의 말투에 시비를 걸던 승객도 서둘러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출·퇴근길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한 대화가 끝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버스는 다음 정류장으로 향했다.

 

점점 무더워지는 여름날, 2017년 1월 어느 날의 기억이 소환됐다.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본다. “오늘은 버스를 탔다. 집에서 회사까진 대략 1시간 남짓. 하늘은 낮은 구름 가득. 학생들 겨울방학 때문인지 월요일 일터로 향하는 차량들이 평소와 달리 줄어 거리는 여유롭다. 버스 운전기사의 안내 멘트도 정겹다. 승객 한 분 한 분에게 ‘즐거운 하루’되라는 인사. 요즘 각박한 세파에 친절하다는 반응들. 새해 둘째 주 첫날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만사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 근데 그 마음이 누굴 향해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 또는 자기 이익에 머무느냐 아니면 그걸 뛰어넘느냐다. 필부필녀(匹夫匹女)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사회지도층이라면, 스스로 엘리트라고 자부한다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거울에 비친 운전기사 얼굴과 활기찬 목소리가 버스 안을 밝게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도 감사감사.”

 

옛말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이 크다.”, “엑 하면 떽 한다.”라는 말도 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무심코 한 행동이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와 글과 행동이 우리 사회의 품격(品格)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한다. 오늘의 생각과 태도가 10년 후의 자신과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갈등과 대립, 반목과 불화가 심해질수록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지도자의 말이 중요하다. 이들의 말 속에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삭막할까.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 분노를 다스리고 일도 감정을 푸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해야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다. 다정다감한 말과 상호 존중하는 태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동포에게든 외국인이게든 마음에 없는 말이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 씨가 된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