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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할머니 동상 앞 시든 꽃다발…텅 빈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나눔의집 현재 주거인원 0명
지난 3월 마지막 주거인원들 노화 등으로 요양병원행
운영주최, 할머니들 주거공간 역사관으로 변경할 계획

 

 

제7회 위안부 기림의 날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광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나눔의집은 적막감으로 가득했다. 한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이곳은 이제 텅 비어 쓸쓸하기만 했다. 할머니들이 생활하던 공간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주변에는 짐 정리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생활공간 앞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동상에는 지난 10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서 놓여진 꽃다발이 시들어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추모공원에는 화분들이 비석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지만, 그조차도 쓸쓸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는 10여 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 생활하며 한글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의료지원을 받으며 지냈던 이곳은 많은 방문객들과 자원봉사자들로 붐비기도 했다. 나눔의집 역사관은 위안부의 아픔과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설립된 장소로, 학생들과 군인들의 견학 장소로도 활용됐다. 그러나 이날, 나눔의집은 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들도, 방문객들도 모두 사라졌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연로해지면서 세상을 떠나거나 건강 악화로 나눔의집이 아닌 병원 등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지난 3월까지도 이옥선(97), 박옥선(101), 강일출(96) 할머니 등 세 분이 이곳에서 생활했지만, 이제는 모두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오직 나눔의집 벽면에 걸린 사진들만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었다. 사진 속 할머니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던 순간들을 담고 있었다. 현재 나눔의집을 관리하며 사무소를 지키고 있는 김서연 씨는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할머니들을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 씨는 "나눔의집 방문객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할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이곳에서 웃음꽃을 피웠다"며 "할머니들은 아픔이 많은 분들임에도 밝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달콤한 과자를 좋아해서 간식을 드리면 정말 행복해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옥선 할머니는 민화투를 치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며 "직원, 할머니들과 함박웃음을 지으며 민화투를 치면 연세가 많아도 얼마를 잃었는지, 얼마를 땄는지 정확하게 계산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나눔의집 찾은 방문객 이민선 씨(가명·26)는 "8년 전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왔었는데 그때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시끌벅적했다"며 "오랜만에 와 보니 공간은 똑같은데 아무도 없다는 게 허망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원평화나비 관계자는 "할머니들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분씩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며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일본으로부터 진정어린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제 할머니들이 나눔의집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일각에서는 이곳을 위안부 피해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눔의집을 운영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이곳을 기념역사관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나눔의집 관계자는 "할머니들이 거주했던 일부 생활시설을 복원해 전시실로 사용하고, 전체 시설을 기념역사관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공사 날짜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텅 빈 나눔의집에는 과거 할머니들의 웃음소리만이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는 듯했다.

 

[ 경기신문 = 박진석·이보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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