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 남의 슬픔이나 고통에 함께하고 이 슬픔을 도울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이게 우리를 좀 더 성찰하게 만들어주고 사람과의 관계도 되돌아보는 힘을 주는 거죠. 그분들도 좋아하시고 힘을 얻으시는 게 보람찹니다. 사실 그래서 위로하고, 힘주려고 노래하러 갔다가 우리가 도리어 더 위로받고 힘을 얻고 옵니다.”
종합예술단 봄날의 이건범 기획부장은 그들의 활동이 가져온 기대효과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는 합창단 ‘봄날’이 지난 7월 독일 베를린과 튀빙겐에서 공연을 마쳤다. ‘평화와 인권의 길 위에서’라는 제목으로 3차례의 공식 공연과 베를린 장벽 앞 거리 공연,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과 미테구청 앞에서 거리공연을 열었다.
이들의 공연으로 독일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는 큰 힘을 얻어 현재 철거될 위기의 베를린 소녀상의 영구 존치 조례 발의 청원에 시민 2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만난 합창단 ‘봄날’의 얼굴엔 열정이 가득했다.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좋아해 꾸준히 모인 것이 3년째다. 어려운 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노래로 역할을 할 수 있는 합창단을 만들자는 처음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노래에 대한 열정과 사회적 역할로 ‘봄날’은 지난해 강릉에서 열린 세계합창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사회적 약자를 응원하는 연대의 노래 ‘길 위에서 부르는 노래’(강반디 작곡), 용광로 산재 피해를 다룬 ‘그 쇳물 쓰지 마라’(하림 작곡) 등을 부르며 노동과 인간의 존엄을 노래했다. 아름다운 합창에 사회적 의미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성주 ‘봄날’ 대표는 “합창의 묘미는 내가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어떻게 같은 소리를 만들어 갈까 최선을 다해 맞춰가다 보니 우리는 늘 서로에게 감동하고 부족한 점에 대해 배려하고 이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다들 합창단 활동에 완전히 빠져서 우리의 활동이 너무 멋있고 보람도 있고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또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며 “나이 차이도 있지만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고 식구처럼 대하다 보니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며 단합의 비결을 밝혔다.
노동자, 학자, 시민운동가, 직장인 등으로 이루어진 ‘봄날’이 다른 합창단과 차별화된 점은 ‘메시지가 있는 합창단’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합창단은 아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가장 치중돼 있는 합창단이라는 것이다. 곡을 고를 때도 단순히 아름다운 곡이 아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힘이 될 것인지 생각한다.
이번 독일 공연에서도 한반도의 대결과 긴장을 끝내고 팔레스타인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전쟁을 중지하자는 노래 ‘착한 전쟁은 없다(작사 이건범, 작곡 강반디)’를 만들어 불렀다.
이건범 단원은 “‘착한 전쟁은 없다’는 한반도 긴장 상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대결도 하루 빨리 평화 체제로 바꿔야 된다는 바람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에 가까운 공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이 외교적 노력과 세계의 협력으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뜻이 담긴 노래”라고 설명했다.
합창단 활동을 하며 변화된 부분은 단원 모두가 ‘밝아졌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옆에 있는 동료가 소중해졌고 일종의 신앙과 믿음의 공동체처럼 생활 속에서 가치의 공동체가 됐다.
이건범 단원은 “노래라는 것은 사실 겁나고 힘들 때 나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르게 된다”며 “크게 보면 희망의 노력이겠지만 작게는 그저 내가 부서지지 않기 위한 정도의 노력이다”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런 노래들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인간들이 힘을 낼 수 있고, 우리의 노래가 무섭고 두렵고 힘든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힘으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란다” 라고 말했다.
봄날은 내년 3월 1일 광복 80주년 기념 정기공연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계획이다. 단원도 30명까지 조금씩 늘려나갈 계획이다.
김명진 '봄날' 음악부장은 “김민기씨의 노래가 그 시대에 힘이 된 것처럼, 우리 합창도 힘이 되고 위로를 주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며 “봄날의 존재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부르는 우리도 그렇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