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생태관광자원센터에서 시작된 전시는 평화누리 공원을 지나 평화 곤돌라와 캠프그리브스로 이어지며 분단의 현실을 보여준다.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품들은 이 공간들을 하나의 ‘통로’로 연결하며 경계인 동시에 확장의 가능성을 내포한 DMZ의 의미를 되새긴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관광공사가 주관하는 ‘DMZ 오픈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리는 ‘DMZ OPEN 전시: 통로’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일대에서 개최된다. ‘통로’를 주제로 비무장지대(Demilitatized Zone, 이하 DMZ)의 의미를 살피고 그 공간성을 확장해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전시다.
전시 주제인 ‘통로’는 ‘중간에 막힘이 없어 바로 이동할 수 있게 트인 길’을 의미한다. 완전한 ‘열린 공간’과도 구별되고 양옆에 닫힌 공간이 배치되느냐, 열린 공간이 배치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성격을 나타낸다. 전시의 소주제는 크게 경계, 통로, 공간으로, 12명 작가의 작품 32점을 통해 각각의 의미를 살펴본다.
먼저 ‘경계’에서는 분단의 상황과 경계지역인 DMZ가 가진 긴장감의 정서를 다루고, ‘통로’에서는 그 경계의 흐트러짐을 통해 연결의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다양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미래를 조명한다.
전시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이어지는데, 첫 번째 장소인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는 나오미, 노순택, 윤진미, 한나리사 쿠닉의 작업이 전시된다.
나오미는 DMZ생태자원관광센터에 대형 회화 ‘우리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를 설치했다.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장소성에 주목하며 단둥-신의주, 훈춘-나선 등 강을 경계로 한 접경지역을 그렸다. 강과 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한 군인, 주민, 학생의 모습은 분단된 현실을 보여주며 역사와 오늘날을 상기시킨다.
노순택은 평화누리 공원에 사진 연작 ‘분단인 멀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국-북한 국경 지대를 지나며 차 안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을 흔들리는 시선으로 담았다. 평화누리 공원과 이질적인 경계 지역의 긴장감이 흔들리는 북한, 쉼 없이 뒤바뀌는 남북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미군, 남한군, 북한군이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은 남북의 오랜 정치적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윤진미는 평화누리 공원 한켠에 영상 ‘꿈 꾸는 새들은 경계를 모른다(Dreaming Birds Know No Borders)’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헤어진 가족을 둔 조류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얘기한다.
한나리사 쿠닉은 오스트리아의 중요 여성작가 발리 엑스포(Valie Expo)를 참조한 퍼포먼스 ‘파주 측정하기’를 전시한다. 몸으로 장소를 기억하는 기법으로 분단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평화곤돌라, 갤러리그리브스 곳곳을 기록한다. 장소와 어우러지는 설치 작업으로 날씨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성격이 특징이다.
평화누리에서 곤돌라를 타고 갤러리그리브스로 가는 길목에는 지비리와 노원희의 작업이 설치된다.
지비리는 ‘균열-회색지대(FRAKRUR-Grey Zone)’를 통해 분단 현실을 직관적으로 나타냈다. 사각형 안에 검은색 돌과 흰색 돌을 군사분계선에 맞춰 나눠 놓는다. 관람객들은 그 위를 걸으며 두 돌을 섞어 남과 북의 경계가 상호작용에 의해 흐려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을 담았다.
노원희는 ‘한겨레’ 신문에 연재됐던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2007.1.3.-2007.6.20.)를 위해 그렸던 삽화 연작 121점을 회화로 선보인다.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아시아 이주여성 노동자, 탈북민의 이야기를 전하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서사로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박기진은 설치 작품 ‘평원_땅’을 통해 과거 남한과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보여준다. 유엔군과 북한군의 전차 바퀴가 새겨진 땅은 진동을 통해 전쟁 당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는 시간의 찰나성을 표현했다.
제인 진 카이젠의 ‘여아, 고아, 호랑이’는 일본군 성노예로 지낸 위안부 여성과 한국전쟁 이후 미군 기지 주변에서 성 노동자로 일한 여성, 한국 전쟁 후 서방으로 입양된 국제 입양 여성을 연결하며 전쟁으로 억눌린 여성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찬숙은 철원 양지리의 53번 주소지에 위치한 집 내외부를 일인칭 시점으로 촬영한 영상 ‘리-무브 양지리’를 전시하며 당시 선전을 위해 지어진 집과 그 안에서 이어지는 일상, 그리고 미래에 대해 고찰한다.
신미정의 ‘자신의 경로’에선 실향민 1세대 권문국의 편지를 전시하며 돌아가지 못하는 개인의 그리움을 담아냈다. 직접 인터뷰하고 기록한 이야기들은 생생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전시를 기획한 문선아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에서 DMZ를 닫힌 공간이 아닌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공간으로 강조하고 싶었다”며 “사람의 발이 닫지 않아 생태계의 보고가 된 DMZ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통일촌 등 연구돼야 하는 과제들을 담아 전시를 기획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임미정 DMZ OPEN 페스티벌 총감독은 “DMZ 오픈 페스티벌에서 ‘오픈’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닫힌 공간인 DMZ를 열어보자는 뜻을 담았고, 이번 행사는 아카데미, 포럼, 마라톤, 스포츠, 음악회 등 다양한 각도에서 최고의 아티스트와 일반인이 참여하는 진지하면서 유쾌한 행사, 미래를 위한 생태와 평화의 장소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미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DMZ OPEN 페스티벌’과 함께 11월 16일까지 계속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