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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섭의 이심전심(以心傳心)] 고려인 이주 160년의 대장정을 기억하자!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대내적으로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한다는데 과연 그런가.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 출신 고려인(кореец. 카레이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자.

 

'재외동포에 대한 내국민 인식조사(재외동포청, 2023)'에서 “러시아·CIS지역동포(고려인)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항목에 대해 응답자 1,000명의 3.1%가 “매우 가깝게 느낀다”, 26.2%가 “어느 정도 가깝게 느낀다”, 50.6%가 “보통이다”, 17.1%가 “다소 이질적이다”, 3.0%가 “매우 이질적이다”라고 응답하였다. 이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우리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고려인을 불편해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30대의 부정적 인식(8.5%)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고려인 이해가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고려인들은 조선 철종(哲宗. 1849-1863) 재위 말년인 1863년과 고종(高宗. 1864-1919) 즉위 원년인 1864년을 기점으로 두만강 너머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영토를 확장한 개척자들의 후예들이다. 한국근대사에서 고려인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외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新韓村) 등지에서 활약하였던 최재형·이상설·이범윤·홍범도·안중근·류인석·김경천 등의 든든한 조력자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글과 역사·문화를 지킨 민족교육자들이었다.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는 삼천리 강토에 암흑이 깃들었을 때 한 줄기 빛이었고, 조선의 청년들이 신음하고 있을 때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호흡이었다.

 

고려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1937년 9월, 고려인 18만여 명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불모지역으로 내몰렸지만 특유의 근면·성실과 불굴의 의지로 ‘강제이주’라는 불운을 극복하고 국가·사회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한 지혜로운 민족이었다. 1991년 구소련 해체로 그동안 쌓아올린 삶의 터전이 또다시 송두리째 흔들렸을 때도 고려인들은 러시아 대도시를 비롯하여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흩어지는 기동력을 발휘하였으며, 일부는 자신들의 원(原)뿌리인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고 있다.

 

이처럼 고려인은 160년의 대장정(大長征) 기간 동안 이주하는 곳곳마다 현지 정체성과 고유 정체성을 최대한 빨리 재조합하여 생존·보전·발전·번영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독특한 능력을 갖춘 한국인의 후예가 러시아·CIS지역 10개국에 44만6천명, 국내에 11만3천명이 있다. 이 둘을 합치면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로 분류되는 화성·성남·부천·남양주·안산·평택·시흥·안양·김포·파주·청주·천안·전주·포항·김해 등 15개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초저출산·고령화시대 지방소멸·인구감소를 대비해야 하는 현실에서 안산·인천·광주를 필두로 안성·김포·화성·평택, 김제·익산, 청주·진천·제천, 당진·아산·천안, 김해·창녕·양산, 경주·영천·대구, 그리고 서울 등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고려인 한 분 한 분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고려인 이주 160년을 기념하는 오늘, 고려인 동포사회의 발자취와 삶은 재조명되어야 한다. 대장정의 길이 멀고 험해서 고려인의 국적·가치관·생활양태가 오늘의 우리와 다를 수 있지만 ‘고려사람’이라는 강인한 뿌리의식을 갖고 있고, ‘역사적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귀환하여 다음 세대에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어하는 인지상정을 우리 시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고려인의 전략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우크라이나 볼고그라드에서부터 대한민국 경주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고려인 인적 벨트가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한·미·일의 틀 안에서 추구하고 있는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전략’ 못지않게 북한과 연해주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유럽 대륙까지 뻗어나갈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에서 고려인 동포사회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날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외 고려인 사회와의 유대 강화와 신뢰 회복에 획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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