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목)

  • 구름많음동두천 12.0℃
  • 구름조금강릉 13.1℃
  • 맑음서울 12.5℃
  • 구름조금대전 12.6℃
  • 맑음대구 14.2℃
  • 맑음울산 13.2℃
  • 맑음광주 13.4℃
  • 맑음부산 14.3℃
  • 맑음고창 12.2℃
  • 구름조금제주 15.4℃
  • 맑음강화 12.3℃
  • 구름조금보은 11.4℃
  • 맑음금산 12.4℃
  • 구름조금강진군 14.2℃
  • 맑음경주시 13.4℃
  • 맑음거제 12.8℃
기상청 제공

[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자, 그래서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159 줄리엣, 네이키드-제시 페레츠

 

영국 유명 작가 닉 혼비의 소설 『벌거벗은 줄리엣』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2018년 작품이지만 뒤늦게 국내 개봉된 ‘줄리엣, 네이키드’는 여러 층위를 깔고 있는 작품이다.

 

언뜻 보면 음악영화 같지만 기본적으로는 로맨스 물이고 조금 더 생각해서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한 성찰을 그린 작품이다. 기대하지 않고 골랐다가 의외의 케이크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맨 위에는 초콜릿이 얹혀 있고 그 밑에는 달콤한 크림이, 그 안에는 푹신한 느낌의 빵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많이 먹으면 느끼하지만 적당히 한두 조각을 먹으면 뇌를 활성화시키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유의 영화, 곧 멜로 영화가 지닌 순기능적 특성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로맨스 작품을 봐야 한다. 아니 사실은 스스로 보려고들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타지에 불과하고, 궁극의 거짓말인데다, 결국 헤어짐으로 끝나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러브 스토리에 열광한다. 사랑은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줄리엣, 네이키드’의 기본 로그 라인은 “1993년에 미니애폴리스의 한 클럽에서 공연 도중 갑자기 사라진 미국의 전설적인 록 가수 터커 크로우(에단 호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근데 그건 이 영화의 일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야기의 시작은 영국 샌드클리프에 사는 한 대학교수 던컨(크리스 오다우드)이라는 남자가 포문을 연다.

 

이 남자, 터커 크로우의 광 팬이다. 15년 동안 그를 추적 중이다. 인터넷 동호회도 만들었다. 최초 음반부터 이런저런 글과 신문 자료까지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수집하고, 회원들과 그것을 공유하며, 늘 터커를 놓고 흥분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에겐 터커의 유령을 쫓아다닌 15년 만큼 같이 동거해 온 연인 애니(로브 번)가 있다. 애니는 샌드클리프의 시(市)박물관의 학예사이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래된 유물, 몇 안 되는 유적(상어 눈 같은 것)과 자료를 뒤적이며 산다. 그녀는 곧 1964년을 모티프로 한 전시를 계획 중이다. 1964년에 영국 샌드클리프에서는 롤링스톤즈 공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샌드클리프는 한때는 북적였지만 지금은 쇠락한 해변 마을이다. 런던의 남쪽, 영국 해협과 그리 멀지 않고 대서양과 북해의 바다를 볼 수 있는 지형의 도시로 보이지만 실재하는 곳인 지가 다소 불분명할 만큼 잊힌 해변도시이다. (실제 촬영은 동부 켄트주의 타넷이란 섬의 소도시 브노드스테어스에서 진행됐다.)

 

어쨌거나 이런 작은 도시에서의 대학교수라고 하는 던컨이나, 이런 곳에서 박물관 큐레이터로 살아가는 애니의 삶이란 그냥 별 볼일 없이, 평범하고 서민적이며,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둘은 결국 터커 크로우에 대한 던컨의 집착 때문에 싸우고 갈라선다. 그 와중에 던컨은 대학의 동료 교수와 바람이 나고 애니는 우연찮게 진짜 터커 크로우와 문자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애니도 사실 바람이 난 셈이다.

 

 

그렇고 그런 얘기 같지만 실상 닉 혼비의 이 소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시스토 로드리게스라는 걸출한 싱어 송 라이터의 존재감을 픽션화 한 느낌을 준다.

 

로드리게스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노동자 가수로, 터커처럼 아주 오래전, 곧 70년대에 한 장의 명반을 발표한 후 홀연히 사라졌고 거의 40년이 지난 후 한 열성 팬인 말릭 벤젠룰에 의해 재발굴, 발견되어 다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그 얘기가 바로 말릭 벤젤룰이 만든 음악 다큐영화 ‘서칭 포 슈가맨’(2012)이다. ‘슈가맨’은 시스토 로드리게스가 마지막 공연에서 부르고 사라지기 전 부른 노래이다. 지금 얘기 중인 영화 ‘줄리엣, 네이키드’의 제목 역시 영화 속 전설의 가수 터커 크로우가 공연 중 사라지기 전에 불렀던 노래 제목이다.

 

두 얘기는 이 부분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영화를 만든 제시 페레츠 감독은 이야기를 좀 더 말캉말캉한 러브 스토리로 바꿔 놓았다. 거기에다 성찰의 드라마를 비벼 놓고, 할리우드 식으로 비교적 ‘해피’한 ‘엔딩’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그게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슬며시 미소를 짓게도 만든다.

 

 

전설의 가수 터커 크로우는 잃어버린 20년간 사방 군데에서 여자를 만났고 마약과 술에 취해 살았으며 그래서 낳은 자식이 5명이나 되는데 각각 다 엄마가 다른 아이들이다. 지금은 아주 어린 아들 잭슨을 돌보며 살고 전처의 집, 뒤편 창고에서 백수로 지낸다. 그래도 그의 생계는 과거 그 전설의 음반이 만들어 내는 음원 수익으로 가능한 상태이다.

 

한때 막 살았던 인간은, 막무가내의 삶과 엉망의 일상을 살았던 사람은, 어느 순간 철 지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런 사람들은 비교적 통찰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 터커 크로우가 애니와의 문자’질’에서 여자가 자신의 지난 15년 인생이 온통 마이너스뿐이라고 말하자 이렇게 답을 쓰는 식이다.

 

 

“인생에서 15년을 낭비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좋아요. 우선 숫자부터 줄여 봅시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을 빼고, 즐거운 대화와 수면 시간도 빼요. 그것들은 중요한 거니까요. 그럼 낭비한 시간이 10년쯤으로 줄어들 거고 10년 미만의 모든 것은 세금 낼 때도 탕감해 줘요. 농담이고요, 난 내가 잃은 것들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아프지만 밤이 되면 그냥 그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잠을 잘 못 자나 봐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애니는 뒤늦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터커를 만나러 런던에 갔다가 그가 갑자기 심장 쇼크로 병원에 실려 간 후 문병을 간 자리에서 그 많은 터커의 자식들, 몇 명의 전처들을 한꺼번에 만난 후 자신은 이 ‘패밀리’에 낄 틈이 없다고 느낀다.

 

아이를 갖는 것에 망설이게 된다. 애니가 전처들과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터커를 만나는 병실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코믹한 장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장 편안하고 평화로우며 동시에 아주 착한 장면이다.

 

이복의 형제들은 어색하고 낯설지만 서로 예의를 다해서 인사를 나누고 전처들은 ‘한심한’ 남자를 한때 공유했던 ‘한심한’ 사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인다.

 

 

‘줄리엣, 네이키드’는 하찮아 보이는 작품들, 트로트 콘서트 영화와 아이돌스타들의 팬덤 콘텐츠들이 극장가의 메인 룸을 차지하고 있는 이 허름한 세상의 한구석을 지키며 스스로 조용히 빛을 내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작은 진주를 발견한 듯한 느낌을 준다.

 

 

에단 호크의 늙어 가는 연기가 일품이다. 소설도 쓰고 연주와 노래도 하는 배우답게 이 문학 영화에 딱 들어맞는 메서드 연기를 펼친다. 로즈 번은 ‘노잉’(2009)을 찍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거의 그때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았다. 영화 속 애니와 달리 15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는 얘기일까. 닉 혼비의 소설 속 캐릭터를 자기만의 무엇으로 재해석해 낸 배우들 연기의 합이 좋은 작품이다.

 

 

터커는 애니를 만난 후, 그들만의 재결합을 한 후에 25년 만에 새 앨범을 낸다. 앨범 제목이 ‘자,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인가?(So, where am I?)’이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영화가 묻고 있는 질문의 핵심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