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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리영희

 

1929년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소년은 열네살에 5년제 경성공립공업학교(현 서울공고)에 입학한다. 4학년때 해방을 맞았다. 이듬해에 국립해양대학에 들어간다. 공업학교와 해양대학은 국비였다. 가난한 청년이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안동중학의 영어선생이 되었는데, 바로 내전(6.25)이 터져서 군에 들어간다. 유엔군 연락장교가 되었다. 1957년 소령으로 제대할 때까지 7년간 주로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벤 플리트 유엔군사령관 등 주요장성들 통역을 했다.


예편과 동시에 합동통신 기자가 된다. 대부분 서울대학 출신들이었던 당시 외신부에서 그 누구도 선생의 영어를 따라오질 못했다. 그 탁월함으로 미국대사관의 공보담당이나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매체들의 민완기자들과 신뢰와 교분을 쌓았다. 그로써, 5.16 이후 1960년대 우리 언론계에서 외신특종은 대부분 리영희가 도맡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61년 박정희와 케네디의 정상회담이었다. 동아 조선 등이 정상회담 성과를 과대포장하며 구테타 세력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을 때, 합동통신의 리영희 기자는 미국기자의 제보를 받아 "케네디의 한국원조는 박장군의 민정이양 댓가"라는 대특종을 날린다. 박의 야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그 특종으로 취재보도를 중단하고 조기귀국을 당한다.


1964년에 조선이 리영희를 외신부장으로 스카웃한다. '승깔은 맘에 안들지만', 그 출중함을 높이 친 것이다. 거듭되는 특종으로 독재정권의 미움은 산이 되었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리영희를 거칠게 협박했다. 한치도 밀리지 않았다. 


오호애재라! 그 일이 리부장과 독재정권 사이의 불화에 정점을 찍었다. 이직 5년만에 해직되었다. 그후 할부책 영업을 하며 가장의 도리를 다하였다. 선생의 이력 가운데 이 대목을 접할 때마다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후 1972년에 한양대학 신방과 교수가 되었다. 평생 해직 네번, 구속 다섯번의 고초를 겪었다.


르 몽드(Le Monde)는 1944년 창간 이래로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일간신문이다. 드골은 나치에 부역한 언론사주와 언론인들, 작가들 32명을 처형하고, 수천 명을 추방하였는데, 그 위대한 숙청에 이어 이 진보언론이 태어났다. 


1980년 5월 광주! 신군부는 리영희를 또다시 가두었다. 르 몽드는 리영희 특집을 냈다. '리영희 교수, 한국의 사상의 은사!' 그 무렵 1980년대 초, 중앙정보부는 '대학생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책 30권'이라는 도서목록을 만들었다. 그 상위 다섯 권 가운데, 첫째와 둘째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였다. 세째는 송건호의 "한국민족주의탐구', 네째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다섯번째가 또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이었다. 


이 나라 뜻 있는 젊은이들에게 리영희의 영향이 이토록 심대했다. 정론직필 저널리즘의 교과서 르 몽드는 리영희와 그의 글을 세계 지성사에 굵은 획으로 올려놓았다. 오늘도 선생은 말씀하신다.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가치는 국가, 애국, 이런게 아니다. 진실이다.진실!"


1974년 초판되었던 '전환시대의 논리'가 출간 50주년을 맞는다. 창비는 기념토론회를 연다. 10월 16일.오후 3시. 창비서교빌딩.

 

 

리영희의 삶
1929년 평안북도 운산 출생
1945년 8월 해방
1946년 국립해양대학 입학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유엔군연락장교로 군복무 시작
1957년 합동통신 외신기자로 사회생활 시작
1964년 조선일보 외신부장. 5년만에 해직. '아시아아프리카 외상회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검토' 특종기사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1971년 박정희의 위수령에 항의하는 지식인 64인선언에 참가를 이유로 해직
1972년 한양대학 신방과 교수 및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부임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1976년 교수재임용법으로 해직
1977년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출간
               반공법위반혐의로 2년 복역
1984년 복직.'분단을 넘어서' 출간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 초빙교수
1988년 한겨레신문 이사 논설고문.
1989년 한겨레신문 창간 1주년 기념 '방북취재계획'으로 구속
1994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출간
1995년 한양대 정년퇴직
1999년 '반세기의 신화' 출간
2000년 뇌졸중 투병시작
2005년 '대화ㅡ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출간
2006년 리영희 전작집 12권 출간
2010년 12월 5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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